"80년대는 욕조, 그후엔 물수건 10분이면 자백 술술 나옵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가급적 강압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는 모든 수사관이 알고 있지요. 하지만 조폭·마약수사 등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이런 분야의 수사관을 형사처벌한다면 저는 무기징역감입니다. "

검찰 수사관 출신인 L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와 관련해 이렇게 말하면서 실태를 공개했다.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다 구타로 숨진 趙모(30)씨 사건으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동반 사퇴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는 와중이었다. 그는 물고문의 실상을 이렇게 전했다.

"욕조에 머리를 박고 하던 물고문은 박종철군 치사사건이 발생했던 1980년대의 일이죠. 지금은 형태가 다릅니다. 식당에서 손 닦는 데 사용하는 물수건을 이용합니다. "

그에 따르면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의자에 앉힌 뒤 얼굴에 물수건을 올려놓는다. 이어 주전자의 물 나오는 부분에 겨자를 풀어넣은 뒤 물수건 위에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 주로 코에 떨어뜨리는데, 그렇게 몇 분만 하면 정신을 잃는다는 것이다.

"검찰청사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얻어맞다가 물수건 고문을 당하게 되면 자신이 기절을 했었는지 느끼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趙씨의 사망원인이 하체 손상에 따른 쇼크사로 나온 것에 대해 "아마도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허벅지·낭심 등을 여러 차례 가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뜩이나 전날 술을 많이 먹어 탈진상태였는데 무릎을 꿇어 피가 몰린 상태여서 보통 때보다 충격이 더 심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말로 해서는 수사를 못 합니다. 하루 종일 말로 해도 안되는 게 노련한 강압 조사를 하면 10분이면 끝납니다. "

검거 과정에서부터 격렬하게 저항하기 일쑤인 조폭·마약사범들의 기를 꺾기 위해 수사관들은 여러 기법을 동원한다고 한다. 그는 "협박·구타·얼차려 등을 쓰지 않으면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몸집이 집채만한 범죄자들을 이겨낼 수 없다. 이런 가혹행위는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이라며 "예전에는 검사들도 피의자가 60세 이하면 무조건 반말과 욕설로 다루는 게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변호인을 선임하는 첫째 이유가 수사기관의 작업(가혹행위)을 막기 위한 것일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관·재계 고위층이 단골로 드나들었던 대검 중수부에는 모멸감을 주는 일만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직원의 경우 국회의원이 대기하고 있는 조사실로 슬그머니 들어가서는 "나 내일 그만두는데…"를 시작으로 심한 굴욕감을 주는 언사를 퍼부어 뇌물수수 혐의 등의 자백을 받아내는 베테랑이라는 것이다.

그는 검찰 수사관들이 구속된 데 대해 "경찰에서 검찰 수사관으로 올 때는 민원도 하며 나름대로 힘을 써서 온다. 하지만 이제 누가 강력부 수사관을 지원하겠느냐"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