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4~5등급 대상 저금리 상품 고민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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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시중은행들이 서민대출을 놓고 고민을 키우고 있다. 장삿속만으로 따지면 위험 부담이 큰 서민대출을 굳이 늘릴 필요가 없는 은행들이다.

하지만 ‘친서민’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는 정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은행들의 처지다.

10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지난달 말 서민금융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개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은행권이 바빠진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친서민 정책에 뭔가 더 공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협과 저축은행, 농·수협 단위조합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인 사람들에게 연 11~13%의 금리로 대출을 하는 햇살론을 내놨다. 지난달 26일 출시된 햇살론의 대출 실적은 이미 1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9일까지 1만3469건에 1107억원이 대출됐다. 미소금융과 함께 대표적인 친서민 대출상품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은행권은 지난해 3월 내놓은 희망홀씨대출 이후 뚜렷한 서민대출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은행권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권혁세 부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시중은행 부행장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은행들도 저소득·저신용층에 대한 대출에 나서 달라”며 “서민과 중산층이 느끼는 금리 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일단 은행들은 햇살론과 같은 새로운 서민금융 상품을 내놓거나 기존의 희망홀씨대출의 금리를 낮추고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계층으론 신용등급이 4~5등급 정도인 사람들에 주목하고 있다. 흔히 은행 대출이 가능한 계층으로 분류되지만 소득이 적으면 신용대출을 받기 어렵다.

만일 이들이 캐피털사 대출을 받으면 연 30%를 넘는 금리를 부담해야 하고 신용등급까지 추락한다. 그렇다고 미소금융(7등급 이하)이나 햇살론(6등급)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은행권의 희망홀씨대출(평균금리 연 13%대) 역시 7등급 이하가 주 대상자다.

경제원리로 보면 6등급 이하인 사람들이 햇살론으로 연 11~13%의 대출을 받는다면 신용이 더 좋은 4~5등급은 이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햇살론보다 더 낮은 금리의 상품을 내놓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햇살론은 대출의 85%를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보증한다. 보증 재원은 정부와 신협·저축은행 등이 2조원을 출연키로 했다.

보증이 없는 상태에서 소득이 낮은 4~5등급에 낮은 금리의 대출을 해주면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고민이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개인대출 담당자는 “보증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이 마땅치 않아 금리를 햇살론보다 낮추기 어렵다”며 “특정 계층에 너무 혜택을 주다 보면 신용이 좋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불합리한 경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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