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설정비 다시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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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집을 담보로 은행 돈을 빌릴 때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비용을 면제받는 관행이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근저당 설정비는 대출금의 0.8∼1%로 과거에는 고객들이 부담해 왔으나 지난해부터 은행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은행이 대신 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은행들은 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지자 근저당 설정비 면제를 중단하거나 중단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금리 등 다른 조건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선 대출 부대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근저당 설정비 면제를 전면 중단한다고 6일 밝혔다.

이 은행 개인상품개발팀의 김대석 차장은 "근저당 설정비 면제는 '제살 깎아먹기'식 과당경쟁의 산물"이라며 "비용을 줄이고 적정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담보 대출은 만기가 3년 이상으로 길어 은행이 이 자금을 조달하는 금리는 평균 연 6% 정도에 달한다"며 "그러나 대출금리는 현재 연 6.7%여서 근저당 설정비를 대신 내주면 첫 1년간은 남는 게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일부 고객을 다른 은행에 빼앗기더라도 수익성 확보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흥은행은 오는 18일부터 3천만원 미만 대출에 대해 근저당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담시키고 차츰 범위를 넓혀나갈 예정이다.

국민은행도 근저당 설정비를 다시 받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하반기에 잠시 동안 근저당 설정비를 고객들에게 부담시켰다가 다른 은행에 고객을 빼앗긴다는 일선 지점의 항의에 따라 은행 부담으로 전환했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검토하고 있다"며 "조만간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우리은행이 국내 은행 가계대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이 근저당 설정비용을 다시 물리면 다른 은행들도 상당수 뒤따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근저당 설정비 면제를 도입했던 신한은행 관계자는 "국민·우리은행이 한다면 신한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도 "다른 은행의 추이를 봐서 설정비 면제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 잔액은 1백26조원으로 10월 한달 새 4조8천억원이 더 늘어나 정부의 억제 대책에도 불구하고 증가세가 여전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전체적으로는 지난달 6조1천억원이 늘어났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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