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질 TV, 1년 넘게 '잡음'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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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화질(HD) 디지털 방송이 본격적으로 전파를 탄 지 만 1년이 지났으나 아직 제자리를 못잡고 있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해 11월을 전후해 주당 10시간씩 HD 프로그램을 방송해 왔다. '한선교·정은아의 좋은 아침'(SBS), '행복채널'(KBS-2), '청춘시트콤'(MBC) 등 고정물과 '대망'(SBS)같은 드라마를 HD디지털방송으로 제작했다.

HD디지털방송은 화질과 음질이 DVD에 맞먹는 데다 향후 인터넷 등 다른 미디어와의 연계 등으로 '차세대 뉴미디어'를 이끌 것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방송계 내에서도 계속적인 추진을 유보하라고 요구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미한 보급=현재 HD 디지털 방송을 수신하는 가구 수는 약 3만 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보급이 저조한 것은 HDTV수상기가 3백만원대로 고가이고 HD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HD방송은 장비가 비싸 제작비가 통상의 프로그램보다 3배 이상 되기 때문에 아직은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게다가 서울 일부 지역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HD방송은 현재 용문산 중계소만 거치고 있어 서울 동부 및 경기도 동부에서만 시청할 수 있다. KBS가 이달 중 남산중계소를 이용하게 되면 서울 지역 대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 SBS는 임대료 문제로 일정이 늦춰질 전망이다. 당초 일정은 내년에 광역시까지 커버하는 것이었으나 이런 추세라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HD디지털 방송의 앞으로 행보에 가장 큰 난관은 전송 방식에 관한 논란이다. 방송위원회 산하 디지털추진위원회는 최근 지상파의 주당 HD방송 시간을 내년부터 15시간으로 늘릴 계획을 잡았다. 그러자 PD연합회·방송기술인연합회 등 현업 방송인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현행 미국식 전송 방식에 대한 재론없이 일정을 추진하는 것은 안된다는 주장이다. 방송기술인연합회 관계자는 "미국식이 유럽식에 비해 기술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두배 이상 늘게 돼 있는데도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정책의 일관성을 내세워 거부하고 있다"며 "방송시간 연장은 미국식 전송 방식을 기정 사실화하려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미국식은 실내 TV에서만 가능할 뿐 이동식 TV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식을 채택하게 되면 이동식 TV에 별도 장비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 지상파 HD디지털 방송 책임자는 "미국식에 단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파들의 지적처럼 치명적인 것은 아니며 기술적인 노력을 통해 점차 나아지고 있다"면서 "지금 와서 전송방식을 바꾸면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PD연합회를 비롯해 참여연대 등 3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디지털 TV 방송 방식 변경을 위한 소비자운동'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고 대선 후보들이 유럽식으로 전송 방식을 변경하는 것을 공약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했다.

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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