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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집필 600회… 양근승 방송작가: '발로 쓰는 드라마' 솔선 40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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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정'(情)만은 붙잡고 싶었소. 순박함이라 부르는 것 말이오. 그게 우리네 고향 정서 아니겠소.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은 없었는데 허헛, 하다 보니 농군이 다 됐소…."

지난달 29일 충북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미리 사진을 보고 가지 않았더라면, 방송 작가 양근승(67)씨를 지나칠 뻔 했다. 성성한 백발에 억세고 주름진 손, 느리고 투박한 말투, 손에 살짝 쥔 낡은 담배 파이프. 시골 어귀 어디서나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촌로(村老)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유난히 맑고 깊은 눈이었다.

현역 최고령 방송작가. 집필 경력 41년에 쓴 작품만 2백50여편. 1960∼70년대, 낮잠을 30분만 더 자도 방송국이 뒤집히곤 했다는 전설을 가진 그에게 '기록'을 말하는 건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그는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했다.

90년 9월부터 써 온 KBS1 TV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수요일 저녁 7시35분)가 지난주 방송 6백회를 돌파한 것이다. 때마침 농촌 드라마의 양대 산맥이었던 MBC '전원일기'가 막을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양씨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경쟁자이자 동시에 친구였던 드라마가 떠나간다니 아쉽소. 소외돼 가는 농촌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프기도 하고. 하지만 22년을 끌어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요. 박수는 보내야지."

16부작 미니 시리즈 한 편 끝내고 나면 탈진하는 게 보통이라는 드라마 작가 세계에서, 그는 12년 2개월 동안 '대추나무…'를 혼자 끌고 왔다. 단 한 회의 휴식도 없었다. 해외에 나가서도 팩스로 원고를 보냈다. 그 사이 PD가 6명이나 교체됐고, 무대도 등장인물들도 바뀌었지만, 그만은 자리를 지켰다. 초인적인 인내심의 소유자란 평가가 무색하지 않다. '전원일기'를 12년 가까이 썼던 김정수 작가도 언젠가 "기적과 같은 세월이었다. 소재를 찾느라 진이 다 빠졌다. 몇년 전 썼던 내용을 또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엉엉 운 적도 많았다"고 회고하지 않았던가.

몇해 전 양씨는 방송작가협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후배작가들을 "드라마를 좋아하는 국민성만을 믿고 안주하는 것 아니냐"며 질타한 적이 있다.

드라마가 양산되는 것에 비해 혼이 담긴 작품들은 줄어만 가는 현상을 개탄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치열한 작가 정신을 주장해 왔고, 스스로 모범을 보여왔다. 작가가 발로 뛰고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글이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5년 전 경기도 양평의 시골로 이사했다. 농촌을 제대로 그리고, 살아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서다. 그걸로 부족해 2년 전에는 집필실을 '대추나무…'의 촬영지인 충북 진천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혼자 밥을 해 먹고,틈만 나면 목욕탕·양로원을 돌며 소재를 찾는다. 이런 식의 '현장 속으로'는 그의 오래 된 습관이다. 80년대 말 인기리에 방송됐던 'TV 손자병법'의 경우도 창업을 준비하는 퇴직자인 양 꾸미고 수많은 기업들을 돌아다녀 소재를 찾았다.

"현장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법이오. 또 현실을 알게 되면 엉뚱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지. 지금 농촌은 도시 못지 않게 변화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 드라마에선 60년대 농촌만 묘사하고 있으니…." 작가의 말은 이어진다.

"현장성 외에도 작품에는 반드시 작가의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야 해요. 작가가 주관도 없이, 대중적 욕구에만 휘둘린다면 그 작품은 이미 죽은 거요."

초기 '대추나무…'의 명물이었던 '황놀부'(김상순) 캐릭터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제가 흥부를 싫어해요. 무능하고, 게으르고, 의존적이고…. 온 가족이 함께 볼 뼈 있는 드라마를 만들자며 '흥부병'을 타깃으로 삼았소. 그게 먹혀 들어간 거요."

특히 그는 드라마를 통해 '흙의 정신'을 심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덴마크에 가보니 분뇨 냄새로 진동하는 논밭을 지나면서 아무도 코를 막고 찡그리는 법이 없어요. 농민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서 꾹 참는 거요. 우리 농민도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 되지 않겠소? 작품 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썼소."

10년 넘게 농촌을 그려 온 덕분에 이젠 전원생활이 삶 자체로 자리잡았다는 양씨.

눈에 비치는 구름 한 조각,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논둑길을 걷던 그가 갑자기 몸을 굽힌다. 그의 손에 시든 호박 하나가 쥐어져 있다. 길 옆을 지나치던 동네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왜 여기 호박들이 이렇게 떨어져 있소?"

"사람들도 떠나고, 줍는다고 이윤도 안나고…. 가져 가는 사람이 없어요."

농민의 한숨 섞인 대답을 듣고 그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조만간 '주인 잃은 호박'이 소재로 등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환갑을 훌쩍 넘었지만 그는 아직도 꿈을 먹고 산다. 믿을 만한 후배를 찾아 '대추나무…'를 넘겨 주고 나면,'TV 손자 병법' 같은 드라마를 다시 연재하고 싶다고 한다. 대하 드라마에도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나이를 거론하지 말란다. 방송작가 중에서 자신이 가장 먼저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했으며, 아직도 밤샘 작업을 해도 끄떡없다고 한다.

"나이와 영감(靈感)은 관계없는 거요. 늙었다고 글을 못 쓸 거라는 건 편견에 불과해요. 어느 광고 문구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요."

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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