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기획 일관된 시각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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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제부터인가 호외가 사라졌다. 신속한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고 그 소스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과거엔 신문에 신속한 사건 보도만 기대했지만 오늘날에는 정책 사안 등 중요한 사회적 의제의 제기와 각종 사건에 대한 치밀한 해석까지 바라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언론이 국가의 통제를 받던 시절에는 사실보도와 중립성이 가장 중요했다. 오늘날에도 사건 보도에서 왜곡 없이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의 원칙이다. 하지만 인식론적으로 따진다면 어떠한 사안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문제로 제기할 때, 그리고 사건을 해석할 때는 이미 주관적 판단과 정향성이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중립성은 궁극적으로 별 의미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제 우리 신문도 고유의 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의 색깔 정립 문제는 크게 두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다.

하나는 사설·칼럼·기획물 등에서 발견되는 언론사의 정치적 시각, 이념적 정향이다. 사실 중앙일보의 최대 강점은 사설과 기획물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시각과 자신감 있는 주장에 있다고 본다. 지난 한 주일 동안의 사설을 보면 북핵, 대선, 검찰의 가혹 행위, 모스크바 인질극 등 국내외의 주요 사안에 대한 견해를 소신 있고 강하게 피력했다.

특히 '언제까지 단일화 타령하나'(2일자 2면)는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아직 후보조차 확정하지 못한 현실에 경종을 울려, 무의식적으로 정쟁에 귀를 기울여 온 유권자들을 일깨웠다. 기획물 역시 일관된 시각으로 체계 있는 구성을 보여주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를 학계와 현장 종사자들의 견해를 담아 지속적으로 다뤘으며,'지방을 살리자'에선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예속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요인들, 예컨대 큰 업무 부담과 낮은 재정 자립도 등을 짚었다.

'난곡탐사 보도 그 후'(10월 30·31일자)와 '수해 지역 사람들'(1일자 25면)은 우리가 일상에 쫓겨 잊고 사는 이웃의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분석함으로써 '함께 사는 사회'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또 하나의 차원은 언론의 위상과 정체성을 다소 보수적인 방법일지라도 그저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하는 데 둘 것인지, 아니면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최대한 유발하는 센세이션 지향에 둘 것인지의 문제다.

최근의 헤드라인을 보면 '동네의원 수입 40% 늘었다'(29일자 29면),'과외비 무려 1000만원'(29일자 31면),'6억대 주택거래 실종'(30일 E15) 등 수치를 강조한 것이 많았다. 이는 자극적이어서 눈에 잘 띄고 정확성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논의의 초점을 흐리기 쉽다. 숫자가 갖는 사회적 함의는 매우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그것의 해석에서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논지를 희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독립된 사진기사의 경우, 무엇에 의미를 둘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 사랑의 김치 만들기'(29일자 30면), '마술사와 백호'(30일자 9면), '신나게 흔들면 추위가 싹~'(2일자 26면) 같은 경우엔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외국인 사랑의 김치 만들기'에 나온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모자에는 한 다국적 기업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사기업으로서의 언론은 자연히 상업성을 지향하게 되므로, 흥미 유발에 무게를 두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충실한 정보 제공자라는 정체성을 희석시킬 정도여서는 안될 것이다. 중앙일보가 그 일관된 시각, 이념적 정향성과 함께 언론으로서의 정체성도 좀더 치밀하게 지켜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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