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여 자책하지 말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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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은 건 아니지만 모든 문제를 책에 의지해 풀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죠. 테니스교본을 착실히 읽고 코트에 섰는데 공이 라켓에 맞지도 않을 때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수영 교본을 두 권이나 읽고 수영장에 갔는데 헤엄은커녕 물에 뜨지도 못했을 때 결정적으로 절망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버릇이 어디 가겠습니까? 살면서 낯선 어려움을 만나거나 뭔가 알고 싶을 때 주로 책의 도움을 받는 편입니다.

이 책은 '위로자의 왕'이라 불리는 유대교 랍비의 잠언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배우자나 부모 혹은 자식 등-을 잃는 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임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 법을 일러줍니다. 뜬금없이 청승을 떠느냐 할지 모르나 어느 출판인의 추천을 받아 손댔다가 "미리 읽기를 잘했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답니다.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며 쇼크·부인(否認)·혼란·죄책감과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하답니다. 심지어 "분노는 슬픔 안에 내재된 자연스런 감정"이라며 "부끄러운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니니 소리내어 울고 분노를 터뜨리라"고 권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여읜 슬픔에 비해 이웃의 위로가 맘에 안 찰지라도 서운해하지 말고 그 정성을 고맙게 여기라 충고합니다.

무엇보다 인상깊은 대목은 '샬롬'이란 마지막 장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은 "안녕" "평화" "환영"을 뜻하는 인사랍니다. 유대인들은 장례식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며 "샬롬"하는 인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이는 영원히 떠나 보내는 작별인사이기도 하고, 죽음과 삶을 평화로이 바라보는 마음의 평화를 뜻하기도 하며, 사랑하던 사람이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해주기를 기원하는 뜻이기도 하다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재작년에 읽은 『눈물의 편지』 (넥서스 펴냄)가 떠올랐습니다. 서울 시립 '추모의 집'에 남긴 유족들의 추모글을 모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했던 기억이 새삼스러웠습니다. 그 책이 고인을 향한 것이라면 이 책은 산 자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삶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혼자 살아 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겐 정신적 처방전이, 아직 그 누구의 죽음도 맞이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자신과 타인의 죽음을 준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샬롬."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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