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과 맞붙어야 재밌다는 중3 테니스 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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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테니스의 기대주 전남연. [중앙포토]

앳된 얼굴의 테니스 소녀는 무서운 승부사였다. 코트에 서자 대포알 같은 스트로크를 쉴 새 없이 꽂아댔다. 같이 친 선수 출신 남자 대학생은 공을 따라다니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포핸드를 기계처럼 치고 싶다”는 전남연(15·서울 중앙여중)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친 공에 상대가 쩔쩔 매는 걸 보는 게 즐거워요. 스릴 있잖아요.”

국내 주니어 랭킹 5위 전남연은 한국 여자 테니스를 이끌어갈 유망주다. 올해 3월 전국종별테니스대회와 7월 전국학생테니스선수권대회 중등부 단식 우승을 휩쓸었다. 꿈은 그랜드슬램 대회 출전이지만 아직은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다. 전남연의 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랭킹은 1000위 밖이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한 번에 500만원가량 드는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해서였다.

그런데 지난 7월 천군만마가 나타났다. 피겨의 김연아, 리듬체조의 손연재 등 유망주를 스타로 키워낸 IB스포츠와 5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 것이다. IB스포츠는 전남연의 가능성을 보고 열악한 환경의 테니스 선수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전남연이 테니스 라켓을 잡은 것은 다섯 살 때였다. 육군사관학교 교관이었던 아버지에게 이끌려 수영·태권도 등 여러 종목을 해봤는데 테니스가 가장 재미있었다. 코치의 소개로 만난 노갑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전남연을 보자마자 “눈빛이 살아 있다”며 테니스를 권했다.

초등학교 시절 전남연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기대가 컸던 아버지는 “그런 애도 못 이기면 어떡하냐”며 꾸짖었다. 어머니까지 아버지 편을 들자 전남연은 테니스를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라켓을 놓으니 뭔가 허전했다. 공부로는 또래를 따라갈 자신도 없었다. 결국 라켓을 다시 잡은 전남연은 지난해 전국주니어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전남연의 잠재력은 집안 내력과도 관계가 있다. 아버지는 건국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1m86㎝의 장신이고, 1m67㎝의 어머니는 육상 선수 출신이다. “3㎝는 더 크고 싶다”는 전남연은 1m72㎝다.

하루 6시간씩 훈련을 하는 전남연의 1차 목표는 이달 말 강원도 양구와 9월 춘천에서 열리는 국제주니어테니스선수권대회다. 고교 3학년까지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ITF 랭킹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를 내가 쓰고 싶어요. 그러려면 무조건 다 이겨야죠.” 중3이 고3을 꺾기는 쉽지 않지만 전남연은 “언니들과 붙어야 스릴 있다”고 했다.

 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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