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역사교훈 잊다니" 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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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원이 1일 홍업씨에게 적용된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 등에 대해 대부분 유죄를 인정하고 3개월여간의 1심 공판을 마무리했다. 홍업씨에 대한 이날 선고는 검찰에 의해 구속된 지 1백32일 만에 내려진 것이다.

홍업씨의 최종 형량이 선고된 직후 변호인 측과 검찰이 모두 항소 방침을 밝혀 형량과 일부 무죄 부분 등을 놓고 항소심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홍업씨의 1심 형량이 예상보다 낮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집행유예가 가능한 형량(징역3년 이하)보다 높지만 항소심은 대체로 1심보다 형량이 적고 최고 절반까지 감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1997년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가 20여일 후 보석으로 풀려난 것처럼 항소심 재판부가 결정되면 보석으로 석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홍업씨의 항소심 재판은 1심 재판기록이 넘어가는 등의 절차를 감안해 다음달 중순께 열릴 것으로 보인다.

구속 기소 사건의 항소심은 보통 심리 기간이 4개월이지만 홍업씨의 경우 사실 관계에 대한 심리가 대부분 마무리됐고, 추가로 신청할 증인도 거의 없어 선고가 더욱 빨리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상고심은 법률 적용의 타당성만 심사할 뿐 10년 이하의 징역형은 감형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편 홍업씨에 대한 선고는 재판부가 판결문 작성 등을 이유로 당초 예정됐던 오전 11시보다 30분쯤 늦게 이뤄졌다. 홍업씨는 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서기 15분쯤 전 푸른색 수의에 흰 고무신을 신고 들어섰다.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 중 일부와 눈인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가자 홍업씨는 고개를 숙인 채 경청했고, 법정에는 고요 속에 긴장이 흘렀다.

재판부는 "전임 대통령 시절 유사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5년이 흐른 오늘 지난 일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비슷한 내용의 범죄를 되풀이한 피고인들에게 똑같은 범죄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엄정히 심판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다만 홍업씨의 경우 각 사건의 구체적인 청탁이나 알선 내용, 수수 금액 등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수수한 돈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점 등을 유리하게 참작해 형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홍업씨는 선고가 끝난 뒤에는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법정에 들어설 때보다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방청객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법정 밖으로 나갔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김홍업씨 수사 및 재판 일지

▶2월 4일=차정일 특검팀, 김성환씨 소환

▶3월 25일=특검팀, 김성환씨 수사자료 대검 이첩

▶4월 1일=대검 중수부 수사 착수, 30명 출국금지

▶5월 4일=김성환씨 구속

▶5월 9일=아태재단 행정실장 김병호씨 소환

▶6월 1일=이거성씨 17억원 수수 혐의 구속

▶6월 11일=유진걸씨 구속

▶6월 21일=김홍업씨 알선수재·변호사법위반 혐의 구속

▶7월 10일=홍업씨 기소

▶8월 2일=홍업씨 첫 공판

▶10월 21일=검찰, 징역 6년·벌금 10억원·추징금 5억6천만원 구형

▶11월 1일=서울지법, 징역 3년6월·벌금 5억원·추징금 5억6천만원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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