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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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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세기에 셀프헬프 도서 분야를 개척한 사람은 데일 카네기(1888~1955)다. 그가 1936년에 펴낸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법(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1600만 부가 팔렸다. 카네기가 책에서 주장하는 인생 지침 1호는 ‘비난·단죄·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카네기가 제기하는 ‘비난 무용론’은 대략 이렇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극악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비난을 받게 되면 자신을 정당화하고 분개하고 원한을 품는다. 남을 비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남을 이해하는 게 훨씬 낫다.

‘비난 무용론’은 개인 처세 차원에서는 충분히 통하는 이야기다. 국내외 정치 차원에서는 씨도 안 먹힌다.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은 모든 게 부시 탓 아니면 오바마 탓이라는 비난이 오가고 있고, 미국과 중국은 천안함 피격 이후 상호 비난에 가까운 설전이 한창이다.

나라 안 사정을 봐도 ‘비난 무용론’이 설 땅은 없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가 8일 지명되자 민주당은 “한마디로 국민 무시, 역대 최악의 개각”이라고 비난했다. 지금 여당이 야당 할 때나, 지금 야당이 여당 할 때나 국무총리 후보자가 발표되면 항상 반응이 엇갈리거나 평가가 극과 극이다. 여당은 환영, 야당은 비난이다. 또한 야당이 단골로 하는 말은 “인사 청문회에서 철저한 인사 검증을 하겠다”는 말이다.

『국민의 마음을 얻고 나라를 움직이는 법』이라는 가상의 책이 있다면 제1 원칙은 “일단 비난하고 볼 것”일지도 모른다. 왕조 시대에도 “나랏님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욕을 한다”고 했다. 민주 정치에서는 비난하는 게 권리다. 그러나 총리 지명이나 개각을 비난하는 게 하나의 의식(儀式), 통과 의례처럼 굳어진 것은 문제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비난의 문제를 성현들의 말을 통해 정리해보자. 정치의 세계에서 비난이 난무하는 것은 비난하면 득이 있기 때문이다. “헐뜯어라! 헐뜯어라! 헐뜯다 보면 상대편에게 낙인처럼 남는 게 있다.”(보마르셰) 또한 삶에서 비난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면 비난을 피할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비난이 오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비난에서 긍정적인 면을 끌어내자. “비난은 즐겁지 않지만 필요하다. 비난은 인체의 고통과 같은 기능을 한다. 비난은 건강하지 못한 상황을 주목하게 한다.”(윈스턴 처칠)

그렇다면 비난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비난의 자격이 문제다. “비난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비난의 대상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에이브러햄 링컨) 그 다음은 비난의 효과가 문제다. 셀프헬프 도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비난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비난의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하며 비난 받을 행동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우리 정계에 대입해 본다면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권이 이번에도 문제가 있는 임명을 했다”는 식의 비난은 효과가 없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