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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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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풍속도 생장(生長)하고 변이(變移)한다. '핼러윈(Halloween)'이 우리 곁에 다가오기까지 궤적이 그렇다.

출발점은 서유럽 끄트머리 섬, 켈트족 축제 '소우언(Samhain)'이다. 기원 전후 아일랜드에 자리잡은 켈트족의 세모(歲暮)는 10월 31일. 이날은 그 해에 죽어 구천을 떠돌던 귀신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육신을 탐내 모여드는 날이다. 켈트족은 사자(死者)를 위로하며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를 열었다. 잡귀들을 물리치기 위해 엽기적인 옷을 입고 밤새 소리를 질러댔다.

비슷한 시기 한반도의 고대국가인 고구려는 동맹(東盟)이란 이름으로, 동예는 무천(舞天)이란 이름으로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소우언을 핼러윈으로 바꾼 것은 기독교다. 가톨릭화된 켈트족은 기독교 축제인 '만성절 전야(All Hallows' Eve)'로 소우언을 대신했다. '만성절(萬聖節·11월 1일)'은 기독교 성인들을 위한 날이고, 그 전날 밤 핼러윈 데이는 '숨진 기독교인을 위한 기도의 밤'. 그런데 동네 건달이나 청년들은 야만의 전통을 잊지 못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기도해줄 테니 먹을 것을 내놓으라'며 추렴을 했다.

비슷한 시기 한반도의 중세 불교국가 고려는 동맹·무천의 전통을 불교식으로 이어받은 팔관회(八關會)를 왕실 차원에서 성대히 치렀다.

핼러윈은 19세기 아일랜드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면서 세계 무대에 나섰다. 아일랜드 젊은이들은 신대륙에서도 핼러윈만 되면 기괴한 옷을 입고 밤거리를 주름잡았다. 음식을 안주면 기물을 파손해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아이들만 남아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사탕 안주면 해코지)'이라며 사탕을 받아가는 재롱잔치로 바뀌었다.

우리의 경우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귀신들을 위로하거나 혹은 쫓아내는 형식의 축제는 민간 차원의 세시풍속(지신밟기·동제 등)으로 명맥을 이었다.

최근 한반도에 상륙한 핼러윈은 일본의 코스프레(Costume Play)에 가깝다. 만화 주인공 복장을 하고 밤새 놀아보자는 일본식 변형이다. 이웃을 돌며 음식을 추렴하는 대신 호텔·클럽에 모여 먹고 마신다. 소우언과 동맹의 출발점은 비슷했지만, 지신밟기와 코스프레는 너무 다르다. 미국·일본을 둘러온 핼러윈의 변총 코스프레가 오늘의 젊은 문화 대접을 받고 있다.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obsang@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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