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짙은 중국 '달 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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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주를 향한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질 태세다.

'3년 내에 지구 궤도를 선회할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8년 뒤에는 중국인도 달을 밟게 된다. 금세기 안에는 달 표면 위에 도시를 건설한다'.

중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달 탐사 계획표다.

중국은 지금까지 모두 27개의 위성과 3척의 무인 우주선을 지구 궤도 위에 올려 놓았다. 발사시험 성공률은 1백%다. 이런 성과에 비춰보면 중국이 거창한 달 정복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중국의 우주과학기술은 탄탄한 수준이다. 개혁·개방 이래 부쩍 자라난 경제를 밑천으로 중국은 이제 군사방면 뿐만 아니라 우주과학 분야에서도 강대국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희소식이라 중국 사회가 떠들썩할 법도 하건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왜 새삼스럽게 달 탐사냐'라는 식의 쀼루퉁한 반응도 나온다. 미국과 옛소련이 인간을 처음으로 달에 올려놓은 지 30여년이나 지난 지금 중국이 새삼 이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달 탐사에 들어갈 천문학적인 비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수천만명을 헤아리는 실업자와 임시 실직자(下崗)들, 여전히 빈곤선 아래에서 고통받는 농민들에게 돈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달 탐사 프로젝트의 배경에 '정치바람'이 숨어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11월 8일 개막)를 앞두고 달 탐사가 현 지도부의 치적 과시용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달 탐사 뿐만 아니다. 고도의 경제성장, 국민소득 1천달러 시대, 아름다워진 수도 베이징 등도 정치의 계절에 자주 등장하는 소품들이다. 당 선전부는 이들 소품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대중에게 선보인다. 인민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길 기대하면서.

요즘 몇년 사이 중국은 중요한 국가 이슈들에 철저하게 정치색을 입혀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었던 지난 20여년간 중국의 발전을 지탱했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정치바람 앞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 중국의 많은 지식인은 중국 특유의 실용주의가 정치 앞에 빛이 바래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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