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담]南北대화·北日수교 교섭은 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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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7일 멕시코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원칙을 마련한 데 큰 의미가 있다. ▶북한의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핵 개발 계획 폐기 후 협상▶평화적 해결▶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입장 재확인이 그것이다.

3국은 이를 공동 발표문에 명시함으로써 북한 핵 문제가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대치 국면이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협상의 접접을 찾아가는 국면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북한도 25일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북 발언 수위를 누그러뜨리고, 북·미 현안의 일괄타결 의사를 내비친 점도 주목거리다. 그는 "미·북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감한 접근법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확인했다.

지난 17일 미 국무부가 성명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대한 우려로 미국은 과감한 접근법을 계속 추구할 수 없다"고 한 것을 열흘 만에 뒤집은 것이다. 임성준(任晟準)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은 "부시 대통령이 '기회'라는 말을 했다"고 소개한 점도 고무적이다. 그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재확인 것은 북한의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3국 정상이 남북 대화와 북·일 수교 협상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유용한 틀이라고 합의한 점도 눈에 띈다. 북한의 핵 개발 계획 착수와 남북, 북·일 대화를 직접적으로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더 악화하지 않는 한 남북 간에 예정된 대화와 경의선 연결 등 교류·협력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는 한·미·일 3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도 감지된다. 미국은 최대 현안인 이라크 문제에 외교력을 집중하기 위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낮췄을 수도 있다.

한·일 두 동맹국의 북한 핵 문제 연착륙 해법에 손을 들어주면서 이라크 개전 때 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일 양국도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속도를 줄이면서 남북 대화나 북·일 수교 교섭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한 듯하다.

김대중(金大中)정부에 남북 대화·교류 지속을 통한 남북 도로·철도 연결은 햇볕정책의 결정판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내각한테 북·일 수교 교섭은 그의 정치 생명과 맞물려 있다.

3국 정상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큰 틀에만 합의하고, 구체적 조치를 내놓지 않은 것은 이같은 전략적 우선순위의 차이 때문일지 모른다.

3국이 북·미 양측 모두 무효화됐다고 주장한 제네바 기본합의의 유지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은 일방적 파기가 가져올 파장과 서로의 입장차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이것이 미묘한 문제며, 수습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 해법의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 계획 폐기 없이 먼저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며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가 그들이 주장하는 일괄타결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로스 카보스=김종혁 기자

서울=오영환 기자

kimchy@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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