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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끼리만 소통, 믿고 싶지 않겠지만 역사는 반복되더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기자는 2년 전 박지원(68·사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넘치는 자신감과 촌철살인은 여전했다. 표정은 밝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2년 전 민주당에 복당한 바로 다음 날 중앙SUNDAY와 첫 인터뷰(2008년 8월 24일자 6면)를 했다. 당시는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였다. 자신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던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민주당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수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그는 민주당의 안방마님이 돼 있었다. 어느새 야당가의 최대 이슈 메이커가 된 그를 5일 만났다. 장소도 의원회관에서 국회 본청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바뀌었다. 때로는 솔직하고 때로는 신랄한 그의 답변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경쟁하고 민주당은 안주해
-7·28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했다.
“국민은 건방 떨면, 겸손하지 않으면 가혹한 심판을 내린다. 그런데 우리는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해 마치 정권을 다시 찾은 양 행동했다. 지난 1년간 정말 치열하게 승리를 위해 노력했는데 백공일과(百功一過)더라. 공천도 그랬다. 치열함이 부족했다. 그래서 패한 거다.”

-패배를 예견했단 뜻인가.
“도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재·보선 때는 모든 의원들이 각 동별로 흩어져 지지를 호소했다. 이런 치열함이 야당의 가장 큰 생명력이다. 그런데 이번엔 84명 의원 중 30여 명은 얼굴 한번 비치지 않았다. 진인사 대천명이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을 비판해왔는데 어느 순간 민주당도 같은 길로 들어서 있었다.”
오만과 독선. 허심탄회한 술회에 질문도 한걸음 더 솔직해졌다.

-민주당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에 실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런데 민주당이 어떤 정당이냐. 반세기 동안 평화통일, 공정한 시장경제, 반독재를 위해 헌신해온 정당 아니냐. 이게 우리의 정체성이다. 신익희·조병옥 선생은 35석 내외의 의석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보다 훨씬 적은 의석으로 승리하지 않았나. 역사와 정체성을 지켜나가면 충분히 희망이 있다.”

-하지만 국민은 더 이상 과거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맞다. 그래서 21세기 뉴 민주당 플랜, 생활정치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진정성이 느껴질 때까지. 쇼를 하지 않고 혼을 바쳐서. 인물도 한나라당 대권후보에 비해 꿀릴 게 없다. 시험을 봐도 우리 후보들이 더 잘 볼 거다(웃음). 문제는 한나라당은 경쟁하며 나아가는 데 비해 우리는 모두 안주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9월 전당대회는 국민적 관심을 다시 모으는 계기가 돼야 한다. 두고 봐라. 빅3(정세균·손학규·정동영)가 모두 나올 것이다. 내가 흥행의 단초는 제공하도록 하겠다.”

-호남에서도 위기다.
“호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한나라당도 영남에서 위기다. 우리만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우리도 대오각성해서 대비해야 한다. 내가 2년 전 국회의원이 됐을 때 DJ가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이 있다. 과거엔 중앙정치와 지역구 관리 중 하나만 잘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둘 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 금귀월래(金歸月來), 금요일 오후에 지역에 내려가 월요일 새벽에 올라오라는 거다. 1년에 50번 이상 하래서 난 그대로 지켰다. 열심히, 꾸준히 뛰면 자연스레 민심을 얻게 된다. 이런 것도 전혀 안 하면서 무조건 찍어주겠지…. 우리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크
다.”

입에 담기 힘든 ‘DJ 험담’ A4용지에 보고
그는 DJ정부의 최고 실세였다. 2002년엔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소통령’으로 불리며 권력의 최정점에 섰다. 하지만 그때 이미 그의 주변엔 감방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역대 정권 2인자들의 귀착점은 거의 동일했다. ‘권력농단’ ‘권력 사유화’ 논란에 휩싸인 현 여권 실세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궁금했다.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여권 내)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역사는 반복되더라. 내가 다시 하면 참 잘할 것 같은데…(웃음). 더 이상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 말문을 닫던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 정부가 소통을 강조하는데 자기들끼리만 (소통)할 뿐이다. 선거 때도 자기 캠프 얘기만 들으면 백전백승이다. 밖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런 가감첨삭 없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청와대가 왜 구중궁궐이냐. 밖에 있으면 누구나 전화하고 찾아갈 수 있지만 청와대는 다르지 않나. 이 정부처럼 내부 소통만 하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때 외부 사람들로부터 DJ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든 험담을 종종 들었는데 나도 차마 말로는 보고할 수가 없어서 A4용지에 써서 건넨 뒤 한번 읽어보시라고 하곤 했다. 그러면 3~4분 뒤 (DJ가) 곧바로 전화해서는 ‘왜 이런 걸 건네느냐’며 버럭 화를 내셨다. 그런데 한두 시간 뒤에 다시 전화해 ‘화내서 미안하다. 계속 이런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시더라.”

-현 정부도 최근 들어 외부와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명됐는데 신임 인사차 이 방에 한번 오고는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정진석 정무수석도 마찬가지고. 뭐, 다들 바쁘겠지.”

-정책기조도 친서민으로 간다지 않나.
“친서민 정책, 얼마나 좋은 거냐. 비록 우리 당이 계속 주장해온 것이지만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언제든 휴대전화로 연락하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갑자기 도둑놈 잡듯이 하고, 또 주위에서 너무 나간다니까 금세 꼬리를 내리고…. 진정 친서민 정책을 쓰고 싶으면 국회에 계류 중인 재래시장 소상인 지원법을 통과시켜주면 된다. 선거가 끝나니까 곧바로 공공요금 올려버리고, 대학생 등록금 문제는 일언반구도 없고. 국민은 손 안에 행복을 쥐여줘야 비로소 느끼는 법이다. 경제도, 외교도 이쪽 저쪽 모두 잡으려고 허둥대기만 하니까 꿩도 놓치고 매도 놓치는 우를 계속 범하는 거다.”

그가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대통령 보고에 배석해 보면 장관들도 대통령 표정만 살피느라 통계 수치조차 틀리게 보고하는 경우가 숱했다. 대통령 속이는 게 부지기수더라. 옆에서 바로 지적해줘야 한다. 그렇게 못하니까 정책이 조변석개하는 거다.”

그때 박 대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이광재 강원도지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갑자기 큰소리로) 지사님, 안녕하세요~. 공관엔 들어갔어요? (한참을 듣더니만) 지사님은 청와대에만 있어서 잘 모를 수 있지만 부처에 가보면 장관은 공무원의 포로가 되기 십상입니다. 나도 문화부에 있을 때 모든 보고는 5분 안에 끝내도록 했어요. 6분만 지나면 나도 넘어가 버리더라고요. 명심하세요~.”

난 비서실장 호칭이 제일 좋아
-현 여권 실세들을 평가한다면.
“(한 템포 늦추더니) 관전 포인트는 많지만 얘기하면 손해다. 다만 이상득 의원은 대통령 형님답게 여야 의원 가리지 말고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면서 얘기도 듣고, ‘대통령의 뜻은 이런 건데’라며 설명도 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대선배가 밥 먹자면 영광 아니냐. 속담에 있듯이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하잖느냐. 그런데 만나면 큰소리로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한마디 하곤 끝이다. 권노갑 고문처럼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맡아서 하는 사람이 이 정권엔 없다.”

-이재오 의원이 복귀했다.
“이 의원이 가만있지는 않을 거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여의도 대통령 아니냐. 하지만 이회창 총재를 봐라. 9년10개월을 1등 하다가 마지막 한 달씩을 잘못해서 연이어 패하지 않았나. 이인제 의원도 4년반 1등 하다가 민주당 경선에서 지지 않았나. 지금은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르는 것 아니냐.”

-동교동계와의 관계는 어떤가. 일부에선 ‘왕따’라는 시각도 있다.
“일부는 좋고, 몇 분과는 연락도 안하고…. 권 고문과도 지난해 DJ 서거 뒤엔 안 좋았지만 지금은 좋다. 엊그제도 통화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저는 제 갈 길을 가는 거죠.”

-수위 얘기하던 2년 전 초심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당내 비판도 적잖다.
“나는 DJ 비서실장으로서 정치적·역사적 모든 사명은 끝났다. 더 이상 출세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단 민주당이 한번 더 집권해 남북관계와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정책이 꽃피우는 걸 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정권 교체된 뒤 장관을 하겠나, 주택공사 사장을 하겠나. 추하게 그런 짓은 안 한다. 비대위 대표 되니까 다음에 당 대표 하려고 저런다고 여기저기서 수군대더라. 나도 이 이상 오버하면 잘못된다는 걸 잘 안다. 나는 매일 아침 홀로 DJ와 대화한다. 지금 이순간 제게 뭐라고 말씀하시렵니까. 나 혼자 중얼중얼 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목표가 뭔가? 2012년 대선의 킹메이커인가, 아니면 호남 맹주인가.
“둘 다 아니다.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탑을 쌓는 정성으로 모든 걸 다 바칠 것이다. 내가 킹메이커 하고 싶다고 되겠나. 호남맹주는 누가 시켜주나. 잘하면 평가받는 거고 못하면 그만인 거다. 나는 지금도 여러 호칭이 있지만 박 (비서)실장이라고 불러주는 걸 가장 좋아한다.”

-집단지도체제를 주장했는데.
“내 의사는 이미 밝혔지만 비대위 대표는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이다. 입은 닫고 귀는 열며 결정은 단일하게 하겠다. 흥행도 되고 국민에게 감동도 주는 전대를 치른 뒤 원내대표로 되돌아가 정기국회에 대비할 생각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나도 장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전화를 직접 걸고 직접 받는다는 거다. 받지 못한 전화는 반드시 콜백하고. 그의 스마트폰엔 연락처가 5000개 이상 저장돼 있었다. ‘마당발’ 이란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박 대표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원내대표와 비대위 대표, 제1야당의 대표직을 모두 맡고 있는 그는 지금 양날의 칼 위에 서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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