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회견 무산 사태 외교분쟁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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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발생한 한나라당 의원 일행의 기자회견 무산 사태를 둘러싸고 한.중 양국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13일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해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그러자 곧 바로 중국 정부가 "사과는 우리가 받아야 한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양국 외교가에는 "이러다가 자칫 한.중간 외교분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물리력 동원은 유감"=이규형 외교부 대변인은 "최영진 외교부 차관이 이날 오후 외교부 청사로 리빈(李濱)주한 중국대사를 긴급 초치(招致.안으로 불러들임)해 한나라당 의원 일행의 기자회견장에서 물리력이 동원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해명과 재발방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리 대사는 "한나라당 의원 일행이 중국의 국내법을 존중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며 "한국측의 입장을 본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이 대변인은 전했다. 리 대사는 1990년 제정된 '외국기자 및 상주 외국 언론기관 관리 조례'를 중국 국내법의 근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다만 재발방지 요청과 관련, 리 대사는 "이번 사태가 미래지향적 한.중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중국 측의 해명을 들어본 뒤 추가 조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과는 우리가 받아야"=쿵취안(孔泉)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외신 브리핑에서 '한국 국회의원들이 중국 당국의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한 입장이 뭐냐'는 질문에 "사과는 우리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2일 한국의 국회의원 4명의 기자회견은 탈북자들의 불법활동을 부추길 위험성이 있어서 제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의원 중 1명은 한국대사관 초청이고 나머지 3명은 단순 관광 목적이었다"며 "한국 의원들이 취한 행동이 과연 중국 입국 목적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중국에는 1년에 1000명 이상의 외국 국회의원들이 입국하고 있지만 대사관 손님과 여행객 신분으로 와서 기자회견까지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3일 귀국한 김문수 의원은 "설사 관광비자 였다고 해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정당한 의원활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국 측이 전하는 현장 상황=리 대사는 12일 현장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 국회의원 4명이 베이징 장성호텔에서 행사 내용을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다. 호텔 측은 정상영업과 장내질서 유지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기자회견 중단을 요청했다. 의원들이 이를 무시하고 회견을 강행하려 해 호텔 측은 전기를 끊었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자 호텔 측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중국 관계법률과 규정을 알려준 뒤 질서가 회복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그래도 의원들이 떠나지 않고 호텔 회견장에서 10시간 넘게 체류해 호텔 영업에 큰 지장을 줬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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