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돈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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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 상황은 지난해 9·11 테러 직전과 비슷할 정도로 좋지 않다."

조지 태닛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의회 증언이다. 실제로 세계는 발리 이후 속출하고 있는 폭탄 테러로 공포에 떨고 있다. 테러를 막을 길은 없을까. 근절(根絶)은 어렵겠지만 최소화할 방법은 있다. 돈줄을 끊는 것이다. 그러나 테러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이 워낙 교묘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꼬리 밟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미국의 테러 돈줄 차단작업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미국이 지목한 은행계좌 서너개를 동결시켰으며, 계좌추적에도 나섰다는 것. 사우디아라비아는 테러집단 알 카에다의 최대 자금공급원으로 지목돼온 나라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결성된 이슬람교 자선단체들이 집중 조사대상이다. 소득의 2.5% 이상을 이웃돕기에 쓰라는 율법에 따른 이슬람 교도들의 성금이 이들을 거쳐 테러조직에 흘러들어간다고 의심하기 때문.

캐나다 정보 당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교 재단들을 통한 지원액이 매달 1백만∼2백만달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유엔은 알 카에다가 자선단체나 기업을 통해 3천만∼3억달러의 가용 금융자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겨우 그 정도냐'는 반응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5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발리섬 테러에 지원된 폭탄 구입자금이 불과 7만달러 선이었다는 외신을 감안하면 소름끼치는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슬람교 재단 관계자가 처음으로 법정에 서는 사례도 나타났다. 2주 전 미국 검찰은 시카고 소재 국제박애재단(BIF) 책임자를 알 카에다 자금지원 혐의로 기소했다. 8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결성된 BIF는 지난해 3백60만달러의 모금액 가운데 2백70만달러를 아프가니스탄·보스니아 등의 난민지원에 썼는데, 이 중 대부분이 알 카에다 지원을 위장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는 혐의다. 수사 당국은 지난 3월 BIF의 보스니아 사무소를 급습해 확보한 자료를 물증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BIF 측은 검찰의 기소를 '마녀사냥'이라며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돈줄이 문제가 되기는 최근 국내외 최대 이슈로 부상한 북한의 핵개발 자금도 마찬가지다.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느냐는 의문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 경협자금도 이슬람교 재단처럼 의심을 받는 모양이다. 돈엔 꼬리표가 없다지만, 북한 동포 도우려고 보낸 돈이 핵폭탄 개발에 빼돌려진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병수 Forbes Korea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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