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쓴'전원일기' 펜 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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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망이 있다면 힘이 닿는 한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것이다. 대사를 잊어버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날이 온다면 미련없이 그만두겠지만, 아니라면 이 작품과 여생을 같이하고 싶다.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할머니로 남고 싶다. 나의 이런 긍지를 누구든 깨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1년 2월, 방송 1천회 기념식에서 최고령 출연자 정애란(76)씨가 털어놓은 소망이다. 그 소망이 이제 막을 내린다.

정겹고 듬직한 고향 느티나무처럼 22년간 시청자 곁을 지켜 온 최장수 드라마 MBC '전원일기'. 연말 개편에서 폐지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숱한 위기를 넘겨왔는데, 결국 시청률 하락과 소재 고갈이란 덫에 발목이 잡혔다. '양촌리'는 이제 마음의 고향으로만 남게 됐다.

깨지지 않는 기록들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 한국 드라마사(史)에 각종 기록을 세워왔다. 최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그렇고, 무려 13명의 작가와 12명의 연출가가 거쳐갔다는 점도 그렇다. 촬영 장소가 경기도 송추에서 현재의 양수리에 이르기까지 여덟번이나 바뀌었고, 방송 시간도 열번이나 옮겨야 했다.

장수 비결은 각박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TV만 틀면 가족의 사랑과 이웃 간의 끈끈한 정. 그리고 고향의 흙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송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정작 농촌 사람들보다 도시인들의 시청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굳건한 출연진의 꽉 짜인 연기는 두말이 필요 없는 성공의 뿌리. 22년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최불암·김혜자 부부와 김용건·고두심·김수미·유인촌·박은수씨 등의 자연스런 연기가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따로 전문 코디네이터가 없는 것도, 이들이 가진 '농촌 패션' 감각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일까. 양촌리의 식구들은 극 중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다시 성인이 됐다. 반면 '전원일기'는 극심한 소재 부족에 시달리며 인기 하락을 거듭했다. 한때 20%를 넘던 시청률이 최근 7∼8%대로 떨어졌다.

영욕의 22년 세월

"80년대 중반 폐암 치료를 받고 의식이 혼미했던 저에게 모두가 떠나지 말라고 했어요. 김정수 작가는 대사 없이 마당 한쪽 귀퉁이에서 장독 뚜껑을 여닫거나 책 읽는 장면을 만들어주었죠. 이를 악물고 병마를 이겨냈어요."

1천77회 방송에 '개근'한 정애란씨의 회고다. 이처럼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자연히 드라마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최불암씨는 96년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위해 3개월간 자리를 비웠지만, 당선되자 다시 돌아왔다.

물론 아픈 기억도 많다. 일부에선 늘 드라마가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의 메스를 가해 왔다. 시사적인 테마를 다룰 때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정부의 압력도 빠지지 않았다.

80년대엔 장가 못 가는 농촌 총각, 양파·배추값 폭락 등 사회적 이슈를 직접 다뤄 방영되지 못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수매가 인상을 요구하며 농민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내용인 '보리야 보리야'는 신문에 안내 기사가 나간 뒤 갑작스럽게 방영이 취소돼 항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값이 폭락한 양파를 삽으로 으깨는 장면을 삭제하기도 했다. 첫 방송 '박수칠 때 떠나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나가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제목을 바꾸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전원일기'를 살리자

'전원일기'의 종방 소식이 알려지자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전원일기를 살려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전원 생활을 그려 40년 넘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의 '코로네이션 스트리트'(Coronation Street)처럼 '전원일기'도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전원일기 살리기 운동'을 위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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