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4信]밤새 북·폭죽… 광란의 '사담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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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6일 바그다드는 광란 속에서 날이 밝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또다시 향후 7년간 이라크인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할 '위대한 지도자'로 선출된 것이다. 전날 국민투표의 마감과 함께 바그다드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거리마다 광장마다 뛰쳐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감정에 복받친 듯한 젊은이들이 자동차 차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국기와 후세인 초상화를 흔들며 거리를 질주했다.

혁명광장으로 불리는 알 만수르 광장에는 1천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 사인을 해보이며 "후세인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북과 폭죽 소리가 밤새 사그라질 줄 몰랐다.

각계각층 지도급 인사들의 충성 서약 경쟁도 이어졌다. 국영 이라크TV는 고장난 슬라이드처럼 하루종일 후세인 대통령의 얼굴만 비췄다.

다분히 조작된 집단최면의 냄새가 짙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12년에 걸친 유엔 제재로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한 10,20대의 이라크 젊은이들에게 후세인은 욕망의 분출구를 제공하는 '영웅'이었다. 그들에게 미국은 자신들의 석유를 노리는 도둑에 불과했고 후세인은 그것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알 만수르 광장에서 만난 아베드 압둘 하지미예(18)는 "아랍권에서 미국에 대항할 용기가 있는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과 후세인 말고 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후세인에게 내 몸을 바친다"는 구호가 주위에서 터져나왔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들이 후세인을 위해 몸을 바칠 준비가 돼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담 후세인 대학의 한 교수는 "입영 대상자가 1천달러를 내면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광란의 밤은 16일 오전 '1백% 지지로 후세인 재당선'이란 투표 결과가 알려지자 대규모 축하 퍼레이드로 이어졌다. 전날과 똑같은 구호와 후세인 초상화가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행진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외침은 가난한 죄로 총알받이가 될지도 모를 청춘들이 미국에 "우리를 침략하지 말라"고 외치는 절규처럼 들렸다.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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