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LH 부실, 재정 투입보다 자구노력이 우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말 부채가 109조원이나 될 정도로 빚이 너무 많다. 부채비율 525%로 국내 30대 그룹 중 가장 높다. 부채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지난해 4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합병 발표 때만 해도 부채가 85조원이었는데, 불과 몇 달 새 24조원이나 늘었다. 지금은 118조원으로 늘었으며, 이 추세라면 4년 뒤 200조원으로 늘어난다.

더 늦기 전에 부채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시작은 뼈를 깎는 자구(自救)노력에서 비롯돼야 한다. 자산 매각, 인력 감축, 수익성 없는 개발사업의 중단이 우선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LH가 최근 민간 영역의 주택사업을 대거 정리하기로 한 것은 옳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부채가 워낙 많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부채 감축을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LH 문제는 세금 지원 없이는 자체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는 청와대의 인식은 틀리지 않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지원하느냐다. 보도에 따르면 세금 지원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모양인데, 이는 잘못됐다. 지금은 세금을 거론할 계제가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자구노력이 우선이다. 그 다음에 LH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정부가 합리적인 선에서 제도적으로 도와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가령 LH가 발행하는 채권에 정부가 보증하는 방안, 조성 토지의 공급가격 인상 방안, 국민주택기금의 이자율 인하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세금 지원은 최후의 방책으로 검토돼야 한다. 물론 세금 지원에 앞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책이 먼저 수립돼야 할 것이다.

사실 LH 문제는 정부 잘못이 더 크다. 공기업을 꽃놀이패로 생각해 임대주택· 보금자리·세종시 등 무슨 일만 있으면 공기업에 떠넘겼다. 재정으로 하면 국가부채가 늘어나지만 공기업이 빚을 내서 하면 국가채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한 후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또 LH 외에도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공기업에 대한 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