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허브' 꿈꾸는 싱가포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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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금 싱가포르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그 절정은 지난 12일 우리 돈으로 물경 4천2백억원이 들어간 복합 공연장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시어터 온 더 베이'개막식이었다.

19세기 말 싱가포르의 발상지인 마리나 베이에 자리잡은 에스플러네이드. 개막식에는 S R 나단 대통령과 고촉통 총리,리콴유 전 총리 등이 참석해 이를 축하했다. 이곳에서는 개막작인 싱가포르 댄스 시어터의 '레미니싱 더 문(달을 추억함)'을 시작으로 11월 3일까지 '개막 페스티벌'이 열린다.

개막식 준비에 들어간 돈만도 1백억원에 이른다. "마치 돈을 태우고 있는 듯하다"는 한 싱가포르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듯 했다. 이런 매머드 쇼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이 문화공간을 알리려는 싱가포르 정부의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에스플러네이드는 규모 면에서 같은 복합 공연장인 한국의 예술의전당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첨단의 시설을 갖춰 동남아시아 공연 시장의 새로운 중심축(허브)이 될 전망이다. 이 공간의 운영책임자(CEO)인 벤슨 푸아는 "다인종·다문화적인 싱가포르의 이점을 살려 동서양 문화의 가교로 키우겠다. 아시아 전통과 서양의 테크닉이 어우러진 퓨전 예술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에스플러네이드는 두개의 대형 공연장과 스튜디오·야외 극장·도서관·쇼핑몰·식당 등을 갖추었으며,국적과 신분에 상관없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연장'을 모토로 하고 있다. 개막 축제에서 선보인 작품에서도 그런 의지가 엿보였다. '레미니싱 더 문'은 이웃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남성 안무가 보이 삭티(36)의 작품으로, 온갖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아시아 여성의 '자아 찾기'를 주제로 했다.

이어 이 무대에는 싱가포르 레퍼토리 시어터의 '포비든 시티:포트레이트 오브 언 엠프리스(금단의 도시:어느 황후의 초상)'와 '교향환상사시(交響幻想史詩)'라는 생소한 장르를 내세운 싱가포르 차이니스 오케스트라의 '마르코 폴로와 프린세스 블루'가 각각 극장과 콘서트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밖에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협연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쿠르트 마주어)의 연주와 장이모우가 자신의 영화를 발레로 만든 '홍등(紅燈)을 들고', 지난달 한국에서 공연한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의 '아나파자' 등이 특별 기획 초청 공연 목록에 올라 있다.

에스플러네이드를 통해 21세기 문화입국을 설계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까. 우선 외국인들을 합쳐 총 인구가 4백만명 정도인 자국 내의 협소한 시장이 걸림돌로 보였다. 그러나 벤슨 푸아는 "주변 아시아 국가의 관객들을 얼마든지 끌어모을 수 있는 지역적인 이점이 있다"고 자심감을 보였다. 이제 아시아인들이 굳이 런던이나 뉴욕으로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세계적인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산인데 결과는 아직 미지수다.www.esplanade.com.

싱가포르=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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