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 軍政계획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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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이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후 과거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에서 실시했던 군정(軍政)과 같은 통치 방식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12일 최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아프가니스탄처럼 바로 반(反)후세인 정치 세력에 정권을 넘기지 않고 최장 수년 동안 군정을 실시, 바스당원 등 후세인 추종세력에 대한 전범재판과 무장 해제를 진행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토미 프랭크스 중부사령관이나 그 하위 직급자가 군정 책임자가 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 같은 모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바로 넘긴 결과 여전히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도가 나간 직후 아랍연맹은 즉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상황이 다르며, 중동의 한 복판에서 미국이 평화유지를 넘어 군사통치까지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미국 내 중도파들도 "중동 지역의 안정을 오히려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군정은 여러 가지 옵션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발을 뺐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12일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우리는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이며 미국의 정부 구조나 문화를 다른 나라에 강요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그러나 당분간 군대가 이라크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은 반드시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쟁의 이유 중 하나가 원유 통제권을 비롯한 중동 지역 내 영향력 확대에 있는 만큼 확실한 친미 정권이 수립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정착될 때까지 군정은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형태의 통치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일본에서 1945년부터 52년까지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지휘 아래 군정을 실시한 바 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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