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보다 생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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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주가 폭락과 유가 급등 등 국내외 경영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대기업들의 체감 경기도 급냉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특히 내년을 걱정한다. 5∼6%로 보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한다. 대기업들이 당초 계획했던 올해 설비투자를 최근 축소 조정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불안감때문으로 보인다. 모험보다 안정이,성장보다 생존이 더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계속 줄어드는 설비투자 계획=포스코는 올해 1조9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1조8천여억원으로 투자규모를 축소했다. 한국전력도 3조7천억원을 계획했다가 3조5천억원으로, 노키아티엠씨도 4백80억원에서 1백83억원으로 줄였다.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들이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계속 낮추고 있다. 본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백대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설비투자계획'을 공동조사한 결과 이러한 경향이 뚜렷이 드러났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1백4개사의 올해 투자 계획은 15조3천여억원이었지만 최근 14조9천여억원으로 축소(감소율 2.3%)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보다 설비투자를 적게 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조4천억원을 설비투자했지만 올해는 이보다 5천여억원이 줄어든 8천8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1천6백여억원을 투자한 ㈜효성은 올해 1천억원, SK케미칼은 3백50억원에서 2백50억원으로 각각 투자를 줄이겠다고 답변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보다 6%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설비투자는 오히려 줄고 있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27.9%)와 기계(-20.6%)등 설비투자를 많이 하는 업종이 크게 위축됐다.

그 이유로 대기업들은 최근의 주가 폭락등 미래 경영환경의 불투명성(21.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아직도 과잉투자 상황이라거나, 적절한 신규 투자처를 못찾아서, 그리고 부채비율 규제등 정부 규제가 아직도 많아서 등도 주요 이유로 꼽혔다.
따라서 기업들은 잉여자금을 차입금 상환(33.1%)과 은행 예금등 단기자금 운용(28.0%)에 주로 쓰고 있다. 설비투자등에 재투자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25.1%에 그쳤다. 전경련 유재준 경제조사팀장은 "세계경제가 불투명해지면서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에 가장 관심을 쏟는 등 안정 위주의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하반기 이후 회복될 듯=대기업들은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설비투자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설비투자 부진이 1년 이상 지속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본격적인 회복시기가 불투명하다고 응답한 업체도 21.0%나 됐다.

따라서 대기업들은 회복 대책도 주가·환율등 경제변수의 안정(18.4%)과 설비투자등에 대한 세제혜택(18.7)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저금리 지속 및 유가·임금등 원가 상승요인에 대한 억제책이 필요하다는 답변도 많았다.

지난 9∼10일 잇달아 열린 전경련 원로자문단 회의와 회장단 회의에서도 내년 경기와 투자 부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내년 성장률을 5%대 후반으로 보고했다가 질책을 들었다"면서 "자문단과 회장단은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으로 내년 성장률이 이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덧붙였다.

김영욱 전문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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