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공중전화 박스 옆을 지나칠 때면 호주머니를 뒤지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마다 손에 잡히는 50원짜리 동전이 따스해진다 돈이라고는 한번도 벌어본 적이 없는 아내가 다른 주민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파트 꽃밭을 가꾼 음덕으로 흙 속에서 캐낸 보물이다 맨땅 판들 어디 돈 나온다더냐 하더니 생길 때도 있네요 평생 처음 번 거니 당신 줄게요 웃으며 건네주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시영(1952∼)'햇빛' 중
이렇게 소박한 시가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개가 그것이 감성이든 실제든 시인의 체험과 독자의 체험이 맞아떨어질 때다. 50원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돈. '보물'. 상징은 힘이 '쎄다'. 내게도 그런 게 하나 있다. 6·25 때 실종된 내 맏형이 남긴 일어판 낡은 영어 콘사이스 하나. '정진근(鄭鎭瑾)' 이렇게 쓰고, 목도장 하나가 찍혀 있다. 내겐 아주 '큰 책'.
정진규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