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언제부터인지 공중전화 박스 옆을 지나칠 때면 호주머니를 뒤지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마다 손에 잡히는 50원짜리 동전이 따스해진다 돈이라고는 한번도 벌어본 적이 없는 아내가 다른 주민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파트 꽃밭을 가꾼 음덕으로 흙 속에서 캐낸 보물이다 맨땅 판들 어디 돈 나온다더냐 하더니 생길 때도 있네요 평생 처음 번 거니 당신 줄게요 웃으며 건네주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시영(1952∼)'햇빛' 중

이렇게 소박한 시가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개가 그것이 감성이든 실제든 시인의 체험과 독자의 체험이 맞아떨어질 때다. 50원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돈. '보물'. 상징은 힘이 '쎄다'. 내게도 그런 게 하나 있다. 6·25 때 실종된 내 맏형이 남긴 일어판 낡은 영어 콘사이스 하나. '정진근(鄭鎭瑾)' 이렇게 쓰고, 목도장 하나가 찍혀 있다. 내겐 아주 '큰 책'.

정진규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