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죽이려던 부인, 이혼 소송 승소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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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법원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에게 독극물을 먹게 해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됐던 여성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2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50대 여성 A씨는 다섯 살 연상의 남편과 1979년 결혼해 2남1녀를 뒀다. 남편은 회사를 경영해 수입이 넉넉했지만 A씨에게는 일일이 돈을 타서 쓰도록 했다. “무식하다”며 면박을 주고 폭행도 했다.

2005년 5월 새벽에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이 A씨에게 욕을 하고 손으로 밀쳤다. 화가 난 A씨는 “물을 달라”는 남편에게 창고에 있던 살충제를 물그릇에 부어 줬다. 남편은 살충제를 마시다 뱉어 냈지만 식도가 많이 손상됐다. A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형사 입건됐으나 남편의 선처 요청으로 기소유예돼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A씨가 “더 이상 함께 살기 힘들다”며 이혼을 요구했지만 남편은 “비밀로 할 테니 잘 살아 보자”고 달랬다. 그러나 남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남편 죽이려 했던 여자’라고 장모와 이웃에게 말했다.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무슨 할 말이 있느냐”며 폭행이 더 심해졌다. 2008년 6월 집을 나온 A씨는 자녀들의 중재로 ‘한 달 생활비 100만원, 한 달에 두 번 외식’ 등에 합의했지만 남편이 이를 지키지 않자 그해 8월 이혼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A씨가 순간적으로나마 남편을 살해하려 한 바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 조경란)는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남편 재산의 40%인 13억5600만원을 A씨에게 분할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와 폭언과 폭행, A씨의 남편 살인미수와 부부 관계 거부 등으로 결혼생활이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운 점은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A씨의 행동이 남편의 잘못에서 비롯됐고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면서도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결혼생활 파탄의 주된 책임이 A씨에게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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