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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유한마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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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담(madame)은 라틴어 ma domina(나의 여인)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과거엔 귀족 부인을 일컬었다. 마담들은 17~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자신의 응접실(살롱)을 개방하고 시인·학자·예술가들을 초대해 현실과 예술을 토론하고 후원하는 독특한 ‘살롱 문화’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에밀』의 장 자크 루소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와 화가, 음악가가 배출됐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한(有閑)마담’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유한마담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5년 잡지 ‘삼천리’가 지금의 서울 종로2가 종로타워 자리에 있던 화신백화점의 개관 소식을 전하며 “귀부인, 유한마담에서부터 룸펜에 이르기까지 장안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썼다. 이미 일반화됐지만 유한마담이 방종(放縱)·허영(虛榮)과 동의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유한마담의 뜻은 광복 후 크게 변질됐다. 횡보(橫步) 염상섭(1897~1963)은 『두 파산』에서 “머리를 곱게 지지고 엷은 얼굴 단장에, 번들거리는 미국제 핸드백을 착 까고 나선 맵시가 어느 댁 유한마담”이라고 그렸다. 정비석(1911~91)은 『자유부인』에서 대학 교수의 부인 오선영을 통해 ‘양장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댄스홀을 가는 근대적 여성’을 유한마담으로 묘사했다.

이후에도 부정적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중앙일보 69년 12월 20일자 사회면에는 ‘유한마담 등 상습도박 22명 검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한마담들은 비교적 인텔리급이며 가정 형편도 중류급 이상”이라고 썼다. 당시 ‘유한마담 낀 여자 보석밀수단 검거’ ‘유한마담 가장 취객 유인 금품’ 등의 기사도 곧잘 눈에 띄었다. 유한마담의 계보는 80~90년대 강남 부동산 개발 열풍과 함께 복부인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21세기형 유한마담은 어떤 모습일까. 김성주 성주D&D 회장이 단초를 시사한다. 그는 최근 “상류층 여성들이 아침부터 고급 식당에 가서 노닥거리면서 어디서 쇼핑할지, 어디서 놀지만 생각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했다. 괜찮은 학벌에다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몰려다니며 쇼핑으로 시간을 때우는 여성으로 요약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유한마담은 말 그대로 경제적·사회적 여유가 있는 귀부인이다. 자신의 넘침을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흘려보내는 신(新)유한마담을 기다려 본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