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청소년 다큐 '…어른들은 몰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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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내가 엄마냐고요!: 공주여중 3학년 한영이는 늦둥이 동생(3)이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 대신 한영이가 '작은 엄마'가 됐다. 기저귀 갈기, 이유식 먹이기, 목욕 시키기는 기본이고 심지어 육아일기도 쓴다. 아, 고등학교 입학 시험이 다가오는데…, 공부는 언제 하냐고요!

#아빠, 저도 예뻐지고 싶어요: 열네살 수경이는 요즘 유행하는 패션·메이크업·헤어스타일을 줄줄이 꿰고 있다. 그런데 정작 수경이는 외모 때문에 고민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버스를 탔다가 '아줌마가 왜 초등학생 요금을 내느냐'고 따져 싸움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아빠는 마음이 예쁜 게 최고라고 하니 답답할 뿐이다.

공부 잘 하는 언니 때문에 차별당한 쓰라림, 여드름 때문에 문 밖에도 못나간 사연, 학교 선배를 짝사랑하다 퇴짜맞았을 때의 창피함…. 학창 시절을 돌아볼 때 누구나 한두번쯤은 떠올릴 경험들이다. 세월은 지나도 고민의 종류나 정도는 똑같다던가.

진솔한 고민 "내 얘기네"

일요일 오전 방송되는 KBS1 '접속, 어른들은 몰라요'가 청소년들뿐 아니라 기성 세대에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0대들은 "꼭 내 얘기네"라며 공감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장난 같은 쇼·오락의 홍수 속에서, 시청률 5∼8%의 수치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접속…'은 10대들에 대한 진지한 보고서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비추다=일반적으로 TV에 등장하는 청소년은 극단적이다. 전교 1등을 하는 모범생 아니면 어두운 세상에 발을 담근 채 허덕이는 문제아가 대부분이다. 극소수인 이들에게 가려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제작진은 '다수'에게 눈을 돌렸다.

지금까지 총 45회 방영분에 나온 학생들은 모두 43명. 대부분이 평범한 집안에서 또래의 고민을 안고 사는 아이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꼴찌인 학생('꼴찌에게 갈채를' 편), 분당에 사는 세쌍둥이 중학생 형제들의 한판 전쟁('남자 만들기' 편)은 반응이 뜨거워 2탄을 내놓기도 했다.

◇가시밭길을 헤쳐가며=인간 다큐는 대부분 어른이 주인공이다. 청소년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다큐는 별로 없었던 만큼 제작에 어려움도 많았다. 소재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교육 공화국'이라는 한국에서 청소년을 본격적으로 다룬 잡지나 신문은 없었다. 제작진은 수백개의 인터넷 청소년 상담 사이트를 뒤져 학생들의 고민거리를 찾았고 무작위로 학교에 전화해 그런 학생이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소재를 찾더라도 현실적인 벽에 부닥쳤다. 학교에 취재 요청을 하면 거절당하기 일쑤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문 밖에서 반나절을 서서 기다린 것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방영 3개월이 지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청소년들의 삶을 솔직·담백하게 들여다보는 '접속…'에 학생·교사·학교·부모 모두 긍정적인 시선을 던졌다. 요즘은 시청각 수업 시간에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토론을 하는 학교도 많아졌다.

초반엔 섭외에 애로

◇아이들의 말문이 터지다=편당 촬영기간은 15일. PD와 6㎜ 디지털 카메라맨이 졸졸 따라다니며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 의견을 표현할 줄 몰라요. 그래서 부모와의 대화도 점점 단절되죠.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아이들은 차츰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자연스레 부모와의 대화를 시작하더군요." 장보근 PD의 설명이다.

단순히 '지켜보기'가 아니라 제작진과 부모·당사자가 프로그램 속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셈이다.

◇본방보다 인터넷 다시보기가 더 인기=접속의 TV 시청률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일요일마저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은 본방송보다는 인터넷 다시보기를 애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접속 인터넷 홈페이지는 평균 조회건수가 2천건을 넘는다. 지난 7월 방송된 '전교 1등은 나의 것' 편의 다시보기 건수는 1만건을 훌쩍 넘기도 했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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