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을 통한 종교와 철학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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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데칼로그(Dekalog)는 '십계명'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그리고 십계명은 아다시피 3천3백여년 전 모세가 신에게서 받아왔다는 열가지 계명으로 기독교 구약성서의 핵심이다. '철학소설'『알도와 떠도는 사원』과 『영화관 옆 철학카페』로 글쓰기의 새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저자가 이번에는 십계명을 소재로 종교와 철학의 만남을 시도했다.

십계명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도덕규범이지만, 저자는 기독교인들조차 중언부언하듯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그 본뜻을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십계명은 신이 '…하라,…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믿음의 율법이 아니라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존재의 자유를 주려고 하는 신의 권고요, 가이드 라인이다. 따라서 특정종교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도덕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그리스시대에 뿌리를 둔 서양철학의 존재론적 전통을 바탕으로,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10부작 TV영화 '데칼로그'와 대응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에서 영화는 종교나 철학에 문외한인 일반인들도 각 계명의 참뜻에 도달하기 쉽도록 하는 장치다. 즉 각 영화가 담고 있는 녹록치 않은 의미를 각 계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과 철학적 해석, 그리고 이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길을 모색하는 묵직한 사유도 곱씹을 만하지만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철학적 영화세계를 흠모하던 독자라면 연작영화 '데칼로그'에 대한 오랜 궁금증이 풀리는 이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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