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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바둑 두던 봉우리 바라보며 명사십리 해변에서 즐기는 해수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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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03면

전북 군산 선유도 망주봉. 무심한 갈매기들이 해변을 날고 있다

전북 군산 선유도로 향하는 길은 쾌적했다. 26일 오전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별 막힘 없이 3시간 만에 군산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두 개의 여객선 회사가 희한하게도 서로 비슷한 시각에 배를 띄운다. 편도 1만6650원짜리 쾌속선은 50분, 편도 1만3500원짜리 고속선은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선유도 해수욕장이 개장한 성수기(8월 8일까지)에는 쾌속선이 일곱 번 뜬다.

이순신 장군도 쉬어간 곳, 전북 군산 선유도

오후 2시. 쾌속선에 오르자마자 2층으로 올라갔다. 바닷바람이 뜨거운 태양광선을 후드득 쫓아버린다. 파도 사이로 섬들이 이어진다. 고군산군도다. 16개의 사람 사는 섬과 47개의 무인도가 있는 곳. 선유도는 이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이다.

풍수학자 최창조 선생이 “제일 풍광이 좋을 것”이라 했던 만큼 기대가 컸다.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특이한 모양의 돌산이 보였다. 나무는 거의 자라지 않은 거대한 두 개의 암벽 봉우리. 이 섬에서 가장 높은(154m) 망주봉이었다. 옛날 이곳으로 유배된 부부가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여름철 비가 많이 내려 봉우리에서 물줄기가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하면 그때는 망주폭포라 부르기도 한단다.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화해설사 윤연수(56) 선생이 전동 카트에 일행을 태웠다. 골프장에서 쓰던 전기차로 이 섬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륜 오토바이를 사용했으나 너무 시끄럽고 매연이 심해 교체했다”는 설명이다. 크기가 제각각이라 어떤 차는 다섯 명, 어떤 차는 10명이 타기도 한다. 직접 빌릴 수도 있다. 5인승이 하루에 5만원이다.

또 다른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보통 한 시간에 3000원. 하루 1만원이다. 둘이 타는 2인용은 빌리는 삯이 더 비싸다. 그리 큰 섬은 아니어서 그냥 쉬엄쉬엄 걸어 다녀도 괜찮다.

“2.13㎢의 선유도를 중심으로 장자도·무녀도 3 개섬은 서로 연륙교(각각 폭 3m, 길이 268m)로 연결돼 있어 주민들이 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3개 섬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 현재 약 1200명. 선유도에 있는 해수욕장은 ‘명사십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관광이 주된 수입원이고 김양식도 많이 하죠.”

두 신선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선유봉으로 불리게 되었다, 장자도를 중심으로 고깃배 수백 척이 밤에 불을 켜고 고기 잡는 모습을 뜻하는 ‘장자어화(壯子漁火)’는 ‘선유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열매가 염주의 재료로 쓰이는 모감주나무는 세계적으로 희귀종인데 무녀도에 4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라는 등 열심히 설명을 하던 윤 선생이 느닷없이 이순신 장군 얘기를 꺼냈다.

“12척의 배로 명량해협 울돌목 싸움에서 133척의 왜군 선단을 무찌르는 기적을 보여준 이순신 장군은 싸움을 마친 지 엿새가 지난 1597년 9월 16일 수군과 함께 선유도에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우체국이 있는 진말에서 휴식을 취하셨죠. 『난중일기』엔 충무공이 선유도에 도착한 후 몸살을 몹시 앓으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12일간 이곳에서 쉬면서 의주의 조정에 명량해전의 승리를 전하는 장계를 써서 올리는 한편 아들 회를 고향 아산으로 보내 집안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조 관리들이 집안을 풍비박산냈다는 얘기를 듣고는 10월 1일과 2일 일기에 ‘심회를 어찌 다 말하랴’고 비통한 마음을 적으셨다고 하니, 참 안타깝죠.”

이순신 장군은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다 가셨을까. 전란의 풍파가 없는, 백성과 조정이 태평성대를 이루는 세상을 더욱 그리워했던 것은 아닐까.
해가 뉘엿뉘엿 바다 위로 저물고 있었다. ‘선유 8경’의 으뜸으로 꼽힌다는 ‘선유 낙조’다. 그 석양빛으로 데우고 바닷바람으로 간을 한 저녁상이 나왔다. 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김승배(48) 대표가 거들었다. “바닥에 붙어 생활하는 놀래미·우럭 같은 놈들은 다 직접 잡아 올린 자연산입니다. 육질이 벌써 다르지요잉. 반찬도 멍게만 통영에서 가져온 것이고 다 여기서 직접 잡거나 재배한 것들이죠.”

새만금방조제가 인근 신시도와 연결된 데 이어,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가 2013년 완공되면 선유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주민들은 그 이후 상황이 걱정된다고 했다. 이곳의 환경이 더럽혀져서는 결코 안 된다고 했다. 신선들이 떠나게 해서는 안 될 터였다. 길어진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한밤중에 달빛이 환했다. 이날은 마침 음력 6월 15일, 보름이었다. 장자도에서 선유도를 넘어가는 연륙교 한가운데에 섰다. 인간 세상(壯子)에서 신선 세상(仙遊)으로 넘어가는 다리, 사방팔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계란 노른자 같은 둥근 달이 하늘 위에서 파도 위로 맑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절로 노래가 나왔다. 내가 바로 신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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