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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끊으려면 밑바닥 훑을 줄 알고 인문학 소양 갖춰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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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22면

“이제는 운전이 재미있다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지난달 27일 그는 하얀색 택시를 몰고 나타났다. 택시업체의 유니폼 격인 푸른색 줄무늬 셔츠 차림이었다. 네네치킨 창업자인 현철호(49) 대표다. 맨손으로 닭고기 유통사업에 뛰어든 지 14년 만에 매출 1000억원 규모의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달리는 CEO’다. 지금까지 운전한 거리만 130만~140만㎞는 될 것이라고 한다. 치킨 가맹점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일손이 부족해 배송 트럭을 몰았다. 닭 스무 마리를 싣고 서울에서 전남 여수까지 간 적도 있다. 지난해까지 직원들과 이동할 때도 자신이 운전대를 잡을 정도였다. 그만큼 운전을 좋아하고 즐긴다. 그런데 올 2월 이후 달라졌다. 운전이 싫고 힘들어졌단다. 하루 12시간, 택시 운전을 직업으로 시작하면서다. 중간에 회사 일로 한 달 쉬기는 했지만 그는 5개월간 꼬박 회사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체인형 수퍼마켓 진출 저울질
중견기업 CEO가 한두 달도 아니고 반년씩 택시 운전에 매달린 이유가 궁금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외 시장과 다른 분야 진출을 놓고 고민하다 우리 이웃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해 택시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12시간씩 밤낮으로 운전을 해보니 사람과 물건이 흐르는 길이 보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농·수·축산물 중심의 기업형 프랜차이즈 수퍼마켓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7월 말 택시 운전을 그만두면 한두 달 쉰 다음 유통업체에 들어가 6개월에서 1년간 일하며 새 사업 아이디어를 직접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수퍼에서 일자리를 찾을 겁니다.”

‘뒷골목서 쓴 성공 신화’ 현철호 네네치킨 대표

네네치킨은 가맹점 1000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업계 선두인 BBQ가 1800개 안팎의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네네·교촌·페리카나 등이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 대표는 입지와 수익성 등을 감안할 때 가맹점은 1300개 정도가 한계라고 본다. 수요는 한정돼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 보니 쉽게 들어오고 쉽게 나간다. 치킨 체인 본사만 300여 개에 전국 가맹점은 3만5000개에 달한다. 전형적인 레드오션이다. 10년 전 현 대표가 네네치킨을 시작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95년 급식업체에 닭고기를 납품하는 업체를 차려 운영하던 현 대표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치킨은 피자보다 원가가 높은데 파는 가격은 오히려 낮았다. 포장이라도 고급화하면 레드오션에서도 차별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자 박스 형태로 치킨을 포장하는 방식을 거래업체에 제안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기존 포장은 100원이면 되는데 새 포장은 네다섯 배가 든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직접 해보자”는 생각에 네네치킨을 설립하고 포장 박스 5만 개를 주문했다. 소스와 샐러드·무 등을 박스 안쪽에 가지런히 배치해 편하게 먹고 치울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고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공의 문은 조금씩 열렸다.

자신이 모는 영업용 택시 운전석에 앉은 현철호 대표. 신인섭 기자

택시 영업도 마찬가지다. 그는 손때 묻은 다이어리를 꺼내 보여줬다. 시간대별로 손님이 탄 곳과 내린 곳은 물론 남녀 구분과 요금까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처음 택시 영업을 시작한 2월 어느 날 상계동에서 동일로를 따라 건대앞까지 가는데 손님 한 명도 못 태운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과 간선버스 다니는 큰길에서는 택시를 잡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매일 운행일지를 적었습니다. 퇴근 후 지도를 놓고 분석하니 언제 어디에 손님이 있는지 알겠더군요. 무작정 사람이 많은 곳에 차를 대고 기다려봐야 시간만 낭비하기 일쑤입니다. 손님이 골목길과 이면도로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간선도로로 이동하더군요. 이 흐름을 깨달은 뒤에야 공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레드오션도 노력하면 남다른 결과”
사실 밑바닥과 뒷골목부터 훑는 것은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창업 초기부터 가맹점의 입지를 바꿨다. 당시 치킨집들은 대로변에 자리잡고 생맥주를 함께 파는 경우가 많았다. 본사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 탓에 손해를 보기 쉬웠다. 네네치킨은 임대료가 싼 뒷골목에 가맹점을 열었다. 실내 테이블 수를 줄이고 패스트푸드 매장처럼 꾸며 배달에 힘을 모았다. 가맹점 점장이 3만원어치 치킨과 생맥주를 팔기 위해 매장을 지키는 것보다 같은 시간에 치킨 세 마리를 배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이면도로에 자리잡아 잘 보이지 않는 단점은 밑바닥을 훑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하루 80~90마리를 팔던 한 가맹점은 점주가 바뀌자 석 달 만에 하루 15마리로 떨어졌어요. 새 주인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대충 운영만 할 뿐 직접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손해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데 새 주인이 의욕적으로 주변 사무실과 주택을 돌자 판매량은 하루 100마리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2004년 대학을 졸업하고 상계1점을 차린 이희진씨도 바닥을 훑어 성공한 케이스다. 이씨는 2년 동안 하트 모양의 종이에 손으로 감사 편지를 써 치킨과 함께 고객에게 배달했다. 한 번이라도 주문한 고객은 좋아하는 메뉴 등을 목록으로 만들어 관리했다. 덕분에 3년째부터는 월평균 4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가맹점이 발로 뛰면 본사는 홍보와 새 메뉴로 지원했다. 국민MC로 불리는 유재석과 신세대 아이돌인 티아라를 광고모델로 써 인지도를 높였다. 국내산 닭고기만 사용하고 이를 포장 박스에 명시해 다른 업체와 차별화했다. 지난해 7월에는 프라이드 치킨에 채썬 파를 얹어 먹는 ‘오리엔탈 파닭’을 개발했다. 6개월 만에 100만 마리가 팔리는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 성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 대표는 6월달 택시 영업으로 번 돈을 공개했다. 총액 59만원에 세금과 공제를 제하니 38만6000원. 기준보다 많이 입금한 26만4000원을 합쳐 65만원을 벌었다. 장모상을 당해 사흘을 빠졌기 때문에 수입이 줄었다. 7월에는 100만원을 넘길 것 같다고 한다. 한 달에 네 번 휴일을 빼고 26일간 매일 12시간씩 운전대를 잡아야 수입이 이 정도다.

“레드오션이라도 노력하면 남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택시도 1년만 더 해서 노하우를 쌓으면 월 200만원 가까이 벌 자신이 있어요. 택시나 치킨집이나 수익을 내려면 1~2년은 걸립니다. 학교에서는 돈 내고도 배우는데 직장에서는 돈을 받으며 배운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할 겁니다. 그런데도 처음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현 대표는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다. 쉬지 않고 가맹점 점주나 예비 고객들을 만나 얘기를 듣는다. 2007년 충북 음성에 생산 공장을 지었다. 생산과 신메뉴 개발 등은 여기서 일하는 전문가에게 맡긴다. CEO가 이것저것 관리하고 참견하는 것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능한 한 회의를 하지 않는다. ‘높은 분’이 뭘 원하는지 눈치를 보는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서다. 직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그래서 고속 성장과는 거리가 있다. 또 한번 맺은 인연은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99년 의정부에 1호점을 내며 출발한 네네치킨은 2005년까지만 해도 BBQ·교촌 등 선두권 업체와 격차가 큰 편이었습니다. 무분별한 점포 확장보다는 가맹점의 내실을 먼저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본사에서도 육가공 시설과 물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했지요. 덕분에 올 상반기까지 900개가 넘는 가맹점을 냈지만 폐업한 곳은 스무 개도 안 됩니다. 한 자리에서 10년 이상 운영하는 점주도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가맹점인 경기도 포천시의 선단점은 점주인 이연순씨가 2000년 3월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명옥 점주가 10년째 운영하는 경기도 의정부시의 가능2점은 아직도 월 매출 2000만원은 거뜬히 올립니다.”

유재석씨도 오랜 인연 덕분에 모델로 영입할 수 있었다. 현 대표가 마니커에서 영업부 직원으로 일할 때 상사였던 유씨의 아버지가 큰 도움이 됐다. 유씨의 아버지는 네네치킨의 음성 닭고기 가공공장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아들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광고를 허락했다고 한다.

인연 덕에 유재석 광고모델 영입
자수성가한 어느 경영자나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이력도 파란만장 그 자체다.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하고 3년간 목장 인부로 떠돌기도 했다.

“사실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택시 기사가 되고 싶었는데 선친의 반대로 접었지요. 당신이 평생 버스를 모셨거든요. 제가 첫 예비고사 세대입니다. 시험을 봤더니 서울대 수의학과나 경희대 치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습니다. 평안도 평양 출신인 선친이 단신 월남해 서울에 친척이 없습니다. 명절마다 고향에 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지요. 위로 누나 하나 있고 남동생이 둘인 장남이라 나라도 지방에 목장을 세워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건국대 축산학과에 들어갔는데 성적이 B를 넘지 못해 한 번도 못 받았습니다. 졸업 후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말이 좋아 일을 배우기 위해서였지 취직도 못하고 집에 있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워 가출한 셈입니다(웃음).”

현 대표는 목부와 구멍가게 주인을 하다가 93년 닭고기 유통업체인 마니커에 입사했는데 1년 만에 부도가 났다. 동료들과 닭 유통업체를 차렸다가 1년 만에 또 망했다. 굴하지 않고 학교나 기업 구내식당에 닭고기를 공급하는 혜인유통을 95년 설립했다. 자연스레 치킨업계와도 인연을 맺었다. 치킨 가맹점 사업이 궤도에 올라서자 또 외도를 시작했다. 3년 전부터 ‘행복합니다’와 ‘해피주니어’를 매달 10만 부씩 찍었다. 가맹점과 학교·도서관·군부대 등에 나눠줬다. 비용이 연 15억원씩 들었다.

“청소년들이 신문이나 잡지·책 등을 읽지 않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있어야 가난의 대를 끊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가보면 똑같이 맨손으로 출발한 이민자들 가운데 한인들은 성공하지만 중남미 출신은 버는 대로 써버리고 발전이 없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교육과 사회 문화의 차이라고 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한 것도 외할머니의 헌신적인 교육 덕분 아닌가요? 8월부터는 두 잡지를 통합한 ‘해피2데이’를 월 15만 부씩 발행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잡지 발행뿐 아니라 도서관까지 만드는 것이 꿈이다.
“기금을 모아 도서관을 설립하는 재단을 세우고 싶어요. 중·고교를 다닐 때 의정부에 살았습니다. 인구 10만 명인데 도서관은 시민회관(현 그랜드호텔)에 열람실 45석짜리가 전부였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청소년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수록 좋습니다. 택시운전 5개월 동안 번 400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습니다. 언제가는 도서관 재단을 만들 때 내가 직접 번 돈을 종잣돈으로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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