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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파도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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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법 알려진 얘기지만 1996년 2월 러시아 대선 때 거리엔 "차기 크렘린 주인은 대머리"라는 '예언'이 나돌았다. 소련 건국부터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까지 역대 크렘린 주인이 하나 걸러 대머리였으니 '생머리' 옐친 후임은 대머리라는 것이었다. 레닌(대머리)-스탈린-후르시초프(대머리)-브레즈네프-고르바초프(대머리)-옐친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그럴 듯했다. 대머리형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옐친을 이은 걸 보면 거리 예언도 무시할 게 아니다. 아무튼 이 예언을 당시 러시아 언론들은 '리더십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로 해석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청와대 국정홍보실 국장 출신인 최진씨의 '리더십 파도 이론'은 대통령을 통해 나타나는 국민의 변화요구를 그럴 듯하게 설명한다. 요체는 장.단기에 걸쳐 '플러스.마이너스 리더십'이 파도처럼 교차된다는 것이다. 플러스, 마이너스 하니까 '좋다, 나쁘다'는 뜻이 깔린 듯하지만 그건 아니다. '플러스 리더십'은 화끈하고 시원시원해도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유형을, '마이너스 리더십'은 안정적.계획적이지만 좀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유형을 말한다.

리처드 닉슨 이후의 미국 대통령에게 이 이론을 대입하면 닉슨(플러스)-지미 카터(마이너스)-로널드 레이건(플러스)-조지 부시(마이너스)-빌 클린턴(플러스)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도 박정희(마이너스)-전두환(플러스)-노태우(마이너스)-김영삼(플러스)-김대중(마이너스)-노무현(플러스)으로 교차됐다고 본다.

이 이론은 단기 국민 여론이 '과격하면 부드러운, 너무 물컹하면 강한 리더십 요구'로 바뀌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상황에 물리면 국민이 새 리더십을 요구하는 건 세계 공통 현상인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청와대와 여권의 기류가 '개혁 강공'에서 '민생 살리기'로 연성화하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개혁구호에 식상하고 강경파에 지친 국민 여론을 수용한 것이라는 긍정적 해석이 뒤따른다. 문제는 그 같은 국정 리더십의 변화가 어떻게 정책으로 구체화하느냐다. 그러나 변화된 새 리더십이 선보이기도 전에 교육부총리 파동으로 휘청거리고 있으니 안타깝다. 파동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새로 설정한 방향대로 통합의 정치, 실용의 정책이 꽃 피우길 기대한다. 이야말로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이 아닐까.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