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지원 과연 떳떳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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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에 대한 수억달러 비밀 제공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남북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진위에 따라 정국 판도가 바뀌고 다가올 대선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게 분명한 탓이다.

청와대·국정원·민주당·현대가 한 무리가 돼 한나라당과 벌이는 죽기살기식의 거친 공방은 끝을 모른 채 이어질 기세다. 한나라당이 '현대상선이 산은 대출금 4천억원을 고위층 지시에 따라 국정원에 전달하고, 국정원이 이를 북한에 송금하는 과정에 착오가 발생해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늦춰졌다'는 등 의혹을 구체화하며 압박을 가하자 청와대·국정원 등은 일제히 사실이 아니라고 되받고 있다. 산은 측이 정상적인 대출이며 일부를 갚았다고 해명한 데 대해 한나라당은 더 많은 신규대출을 받아 갚은 것이라고 공박하는 등 한이 없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양측의 판단인 만큼 이 난전은 수습이 어렵게 돼 있다. 그러나 사안의 중차대함에 비춰 확실히 짚고 넘어 가야 한다. 그를 위해선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金대통령 자신이 의혹의 한복판에 있으므로 보다 분명하게, 의심의 자락을 남기지 않게끔 정상회담 막후와 대북 지원 내역 등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공보수석 차원에서 "대북 관계는 떳떳하다"며 폭로 내용을 정치공세용 '막말'로 치부하는 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청와대는 왜 관계 기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폭로 내용에 귀 기울이는 국민이 적지 않은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대북 지원을 투명하게 했다고 주장하지만 공감폭은 넓지 않다. 거기에 금강산 관광 사업을 담당한 현대에 대한 의문투성이 지원 등이 의혹을 키웠음직하다.

사태의 장기화와 이로 인한 정국 혼란은 애꿎은 국민을 불안케 하고 우리 경제만 멍들게 할 터다. 한반도 긴장 완화라는 업적에 더 이상의 손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金대통령이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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