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회장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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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6면

노사 문제를 기업주 입장에서 대변하는 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선출을 놓고 전방과 코오롱 그룹 2대에 걸친 비사가 있다.

경총은 기업주 입장에서 노조 문제를 대변해와 회장을 맡으면 소속사 노조가 항상 강경 투쟁노선을 걸어왔다.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에 경총 회장은 '바늘 방석 같은 자리'로 소문이 났다.

경총은 1969년 국내 산업을 대표하는 조선·면방업계에서 노사 분규가 크게 일어난 것이 창립의 계기가 됐다.

당시 기업주들은 노조 문제를 기업 입장에서 대변할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을 벤치마킹한 끝에 현재의 경총과 같은 기업인의 모임인 닛케이렌(日經聯)을 본떠 70년 경총을 만들었다.

초대 회장은 당시 규모가 큰 면방업체인 전방의 창업주 故 김용주 회장이 맡았다. 이후 金회장은 82년까지 연임을 거듭한 끝에 임기 2년의 회장을 여섯번이나 했다. 아무도 회장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12년간 장기집권(?)을 한 것. 82년 총회를 앞두고 회장단이 모두 나서 金회장 후임으로 LG그룹 구자경 회장을 결정했다. 그러나 具회장은 회장을 뽑는 총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군부의 힘을 앞세운 전두환 정권 때라 노조의 힘이 약했는데도 경총 회장을 맡으면 노조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비상이 걸린 총회에서 金회장은 경총 일을 열심히 해왔던 이동찬 코오롱 그룹 회장을 차기회장으로 지목했다.

그 순간 이동찬 회장은 具회장을 찾는다며 회의 석상을 비웠다고 한다.

결국 李회장은 회장단의 설득으로 경총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李회장 역시 그룹 회장들이 모두 회장직을 고사, 15년간 재임했다.

97년 2월 李회장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96년 말 코오롱 그룹회장을 외아들인 웅열씨에게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후퇴한 것이 이유였다.

李회장은 조용히 김용주 전임 회장의 장남인 김창성 전방 회장을 불렀다고 한다. "이제 노구인데다 현업에서 은퇴했으니 당신이 아버지 유업을 이어받아야지"라며 金회장을 설득, 자리를 물려줬다.

金회장도 단임을 하고 싶어했지만 후임자가 없어 연임을 했다. 올해 2월 총회에서 나이(70) 등을 이유로 사임 의사도 밝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결국 3연임 했다.

당시 중견기업인 D사 K회장은 내심 회장을 원했지만 회장단에서 "기업 규모가 작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재계에서는 후임 경총 회장으로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을 주목하고 있다.

언젠가 金회장이 李회장에게 "이제는 당신이 아버지 일을 이어받아야지"라고 말할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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