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당은 만들어질 수 있다 : 자연에 손댈 땐 풍수적 사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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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풍수 전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청오경』이다. 이것은 또한 풍수의 교과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거기에 이르되 "초목이 울창 무성하고 길한 기운이 따르는 곳, 즉 명당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인위적인 것일 수도 있다(或然或爲)"고 하였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풍수관과는 사뭇 다른 지적이다. 흔히 사람들은 명당이 스스로 이루어진 천연의 것이며 그런 터를 찾는 방법이 풍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술법이지 지혜는 아니다.

풍수에서 강조하는 것은 '땅에는 완전한 것이 없다(風水無全美)'는 점이다.

그렇다면 명당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만약 완벽한 명당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풍수의 교과서적 주장조차 부정하고 드는 셈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명당을 찾아냈을 것이며 그런 땅을 썼겠는가. 만약 천연의 명당이 있다 하더라도 이제 남아있을 수는 없다.

다 써버렸으니까. 완전치 못하니까 사람의 보완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인위가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풍수에 인위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현대인들에게도 풍수는 요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땅 중에 문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것은 없다. 시골 풍경이나 전원의 들판을 떠올리거나 산천의 풍광을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람의 손을 수도 없이 탄 것들이다. 농사를 지었고 길을 닦았으며 나무를 심고 제방을 쌓았다.

무엇이 자연인가? 사람이 이용했다면 당연히 그것은 자연일 수가 없다. 인위적 경관이 된다. 현대에도 풍수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내버려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풍수 기술이 아니라 풍수적인 사고의 전환이다.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견디지도 못한다. 그러니 손을 댈 수밖에 없지만 지금까지처럼 반풍수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풍수적 사고가 개입되면 인위적인 것도 풍수적이 될 수 있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고의 기반은 철학이나 지리학, 환경과학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건축학과 조경학 또는 토목공학에서 담당할 수 있다.

조경이든 건축이든 그것은 인공 구조물이지만 건축물이 좌청룡 우백호를 대신하고, 조경에 의한 정원과 공원의 꾸밈이 물길을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자연친화적으로 정화하면 그게 바로 풍수적이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도로나 제방도 직선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서양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설계도가 이 땅에 솟아나게 하자는 말도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 온화 유순한 심성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것이 인위라 하여 반풍수라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살아있는 땅이란 풍수의 기본을 생각하며 심사숙고하면 해답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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