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맞는 美 일방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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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외교단지 내 프로테스탄트 국제교회(PIC)는 지난 3월 17일 이후 예배와 찬송이 사라졌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수류탄 공격으로 미국인 등 5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한 참사가 있은 뒤 한 때 40여명에 달했던 미국인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인근 머리라는 곳의 기독교계 학교는 문을 걸어 잠갔다. 지난달 이슬람 광신도들의 기관총 공격으로 파키스탄 현지인 6명이 숨지는 바람에 이곳에 다니던 미국인 선교사 자녀 등이 모두 방콕으로 옮겨갔다. 여행업을 하는 파키스탄인 압둘라 칸은 기자에게 "백인 근처에 가지 말라.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까"라고 친절히(?) 귀띔해줬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는 더욱 상황이 심각하다.미국인들은 방탄 조끼를 껴입고,그것도 모자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의 호위를 받는다.

시내 음식점에 백인이 들어오면 현지인들이 슬며시 자리를 비키기도 한다. 미국인 때문에 유탄이라도 맞지 않을까 하는 몸조심 때문이다.

9·11 테러 1주년을 맞는 아프가니스탄 등에서의 이런 장면들은 "과연 미국은 승리했는가"란 의문을 들게 한다.

미국이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몰아낸 아프가니스탄이나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파키스탄 등에서의 미국인, 특히 민간인들의 불안감은 9·11 사태 이후 한층 고조됐다. 카불에 있는 세계식량계획(WFP)의 프로그램 매니저 마틴은 "맘 편히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보이는 극렬 테러분자들 때문이다.

문제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서처럼 테러분자 아닌 일반인들도 미국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카불에서 만난 택시업자 아흐맛 오구유르(25)는 "이곳에 온 미군들은 승리자처럼 행세한다. 대통령 경호도 맡고, 돈도 쥐고, 정부도 움직인다"고 비아냥댔다.

지금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여러 나라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이라크 정권을 뒤엎을 계획을 추진 중이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부각되면 될수록 해외 거주 미국인들은 더 많은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게 될 것 같다.

이슬라마바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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