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核개발 증거'사진 왜곡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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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워싱턴=이효준 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지난 7일 정상회담에서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을 보여주는 증거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시한 민간 위성사진을 꼽았으나 IAEA가 이를 정면 반박, 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두 정상은 7일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열린 회담에서 IAEA가 민간 상업위성을 통해 확보한 위성사진과 이라크 핵시설과 관련된 보고서를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증거로 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IAEA가 보고한 이 사진은 이라크가 핵개발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유엔사찰단은 이미 1998년 보고서에서 '사담 후세인이 6개월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또 "더 이상 증거가 필요없다"면서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레어 총리도 회담에 앞서 "IAEA의 위성사진은 과거 핵무기를 개발하던 곳에 새 건물들이 들어선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크 보트 유엔 핵무기사찰단장도 "이들 사진은 이라크가 현재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직접 증거는 아니지만 최소한 문제의 시설을 은폐 또는 계속 활용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 이 사진은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두고 있는 IAEA의 마크 궈즈데키 대변인은 "IAEA는 지난 2년 이상 위성사진들을 검토해 왔으나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새로운 사진과 증거는 없다"고 7일 말했다.

미국의 CNN과 MSNBC방송은 이날 궈즈데키 대변인의 말을 인용, "문제의 위성사진은 IAEA와 관련이 없으며 민간 상업위성이 촬영한 것일 뿐"이라며 "IAEA가 정기적으로 상업위성 사진들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 정상이 제시한 사진도 이미 정밀 조사가 끝나 핵개발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은 또 "98년 보고서는 두 정상의 주장과 달리 '믿을 만한 정보를 종합한 결과 이라크가 핵무기를 생산했거나 핵무기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91년 걸프전 이전까지만 해도 이라크가 6~24개월 후에 핵무기로 전용될 만한 핵물질을 보유할 수 있었으나 걸프전과 유엔 무기사찰로 핵무기 개발능력의 대부분을 상실했다는 것이 IAEA의 결론이었다고 대변인은 설명한 것으로 방송들은 전했다.

이와 관련,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도 "IAEA의 보고서가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며 "백악관은 그동안의 상황을 종합해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을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를 방문 중인 스콧 리터 전 유엔 무기사찰단원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위한 최후 통첩을 발표하는데 있어서 문제점 중 하나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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