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변해야 한국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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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주부 1백명 중 85명이 가정 경제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도 다섯 명 중 네 명이 경제권을 쥐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1996년 연세대 조사보다 10%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이는 중앙일보가 8월 중 서울·부산 등 6대 도시에 거주하는 20세 이상 여성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실시한 '한국 여성의 가치관과 삶'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중앙일보는 넘치는 한국 여성의 에너지가 사회발전에 쓰이도록 하기 위해 '뛰자! 한국 여성'이라는 특별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 조사를 실시했다.

전업주부가 가정 경제권과 가정 내 정책 결정권을 좌우하는 '막강 안방권력'을 소유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한국외대 데 니콜라(33·이탈리아어과)교수는 "이탈리아에는 현재 전업주부라는 개념이 없을 정도로 여자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다"면서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별로 안한다는 점에서 요즘 한국은 1940~50년대의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주부는 가사노동과 육아만 책임지고 돈 관리나 중요한 결정은 돈을 벌어오는 남자 몫이었는데 요즘 한국전업주부는 권한이 막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 주부들은 가사노동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평일에 하루 세끼를 모두 만드는 전업주부 비율은 58.3%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전업주부들은 점차 가정 밖으로 활동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전업주부는 취업주부·미혼여성보다 많은 평균 3.2개의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고,다섯 개 이상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전업주부도 21.3%나 됐다.

비록 모임의 성격이 대부분 소비적인 경향을 띠고 있지만 사회적 네트워크로서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를 봉사 등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환해야할 시점이다.

전업주부들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 각 부문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전업주부의 생활만족도는 매우 높다. 지난 6월 MBC와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만족도 (80.1%)가 화이트칼라 직장여성(69.5%)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설문 결과 한국 여성들의 뚜렷한 의식변화가 나타났다. 가부장적 가치관과 순결에 대한 의식 등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높아져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일단 결혼하면 가정에 안주하려는 자세 등 여성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이중의식도 나타났다.

이번 여성 설문조사는 중앙일보 여론조사팀(팀장 안부근 전문기자)이 주관했고 1차는 7백명 대상의 면접조사,2차는 비슷한 표본집단으로 구성한 전화조사였다.

생활레저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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