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새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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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도끼 자루를 깎자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도끼가 아니면 안 되지((伐柯如何 匪斧不克)…도끼 자루를 깎아라, 도끼 자루를 깎아라! 깎는 법이 멀리 있지 않으니((伐柯伐柯 其則不遠).『시경』

(이가원 감수, 홍신문화사)

책 번역하고 책 쓰는 것이 직업인 인간에게 좋은 책의 좋은 대목을 꼽으라고 하는 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 줄 아세요? 좋아 보이는 책은 찾아 번역했고, 좋아 보이는 글은 찾아서 모두 써먹은 인간의 손이 어디부터 가겠어요? 하지만 내 책에는 손대지 않을 걸 벌써 눈치채고 이 짓 맡겼다는 걸 나도 짐작은 해요. 다행히도 내게는 좋은 책이 정말 많답니다.

결혼식에 가서 덕담할 때마다 내가 인용하는 구절인데요, '도끼'와 '도끼자루'가 퍽 섹시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요? 원효대사께서도 한번 써자신 적이 있지요. 그런데 나는 '도끼'를 때로는 '인생'으로 때로는 '책'으로 읽어요. 본(本)이 도처에 숱해서 살기도 쉽고 쓰기도 쉽네요.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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