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루사'한반도강타]'사라'이후 43년만에 최대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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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5호 태풍 '루사'는 중심기압·풍속 등 규모면에서 1959년 9월 중순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사라' 이후 가장 위력적이었다.

루사는 특히 전남 고흥으로 상륙한 뒤 전북→충북→강원도로 내륙을 길게 관통해 피해가 컸다. 기상청은 루사가 평소와 다른 한반도 주변의 기압 배치와 해수면 온도 등에 의해 내륙에 상륙해서도 강한 위력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사라' 이후 최대 위력=태풍의 위력을 나타내는 중심 최저기압으로 볼 때 루사는 59년 한반도를 강타한 사라에 이어 두번째를 기록했다. 사라는 남해안에 상륙, 부산을 강타할 당시 최저기압이 9백52h㎩을 기록했는데 루사는 여수에서 측정된 최저기압이 9백70h㎩이었다.

루사의 영향으로 지난달 31일 하루 동안 강릉에는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인 8백70.5㎜의 비가 쏟아졌다. 또 제주 고산지역의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56.7m를 기록, 2000년 8월 말 태풍 '프라피룬' 때 흑산도의 순간 최대풍속 58.3m에 이어 관측 기록 2위를 차지했다.

루사는 강풍과 함께 다량의 수증기를 몰고와 지난달 30일부터 1일 오전까지 제주도 산간 4백~7백㎜, 남해안 2백~4백㎜, 강원 영동 3백50~9백㎜의 폭우를 뿌렸다.

◇왜 강력했나=열대 태평양에서 발생, 중위도로 북상하면서 세력이 약해지는 다른 태풍과 달리 루사는 한반도에 상륙한 뒤에도 강한 위력을 유지하며 내륙을 관통했다.

지난달 23일 괌섬 동북동쪽 1천8백㎞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루사는 제주도를 거쳐 31일 오후 고흥지방을 통해 내륙에 상륙한 이후에도 이례적으로 줄곧 중심기압 9백70h㎩대의 대형 태풍의 위력을 유지했다.

이는 루사가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남해상을 거치면서 태풍의 에너지원인 다량의 수증기를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열대 태평양에서 몰고온 수증기를 비로 뿌리며 '체력'이 소진될 무렵, 고수온대의 남해상에서 증발되는 수증기를 흡수하면서 체력을 보강, 대형 태풍의 위력을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남해상이 평년보다 1,2도 높은 27도 정도의 고수온대를 유지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기상 재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한반도 서쪽에서 불어오는 상층 편서풍이 이례적으로 약한 데다 한반도 동쪽에 위치해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강해 루사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지 못하고 내륙에 오래 머무르는 바람에 호우와 강풍 피해가 컸다.

피해는 태풍 위험 지역인 오른쪽 반원에 들었던 남부지방·강원 영동 지방에 주로 집중됐던 반면, 서울·경기지방을 비롯한 서해안 지방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았다.

태풍의 바람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불기 때문에 바람 방향이 태풍 진행 방향과 일치하는 오른쪽 지역에서는 풍속이 훨씬 빨라져 피해가 커진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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