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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트랜드&이슈] 추위 강한 몽골·러시아계 겨울철 노동시장서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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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따뜻해서 좋아요. 한파 속에서도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일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근로자 노마(21.(左))와 알렉스(26). 아래 사진은 몽골 근로자 가나(21.(左))와 초지(31).

잠시 포근해지는가 싶더니 수은주가 다시 곤두박질친 4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삼육지관공업 앞마당에서 종이 파이프 더미를 트럭에 싣던 카자흐스탄 노동자 세르게이(30)는 옷깃을 여미며 투덜대는 한국인 동료에게 이깟 추위에 무슨 엄살이냐며 핀잔을 준다. 작업이 계속되면서 아예 입고 있던 점퍼까지 벗어버린다. 속에 땀이 차서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표정이다.

잠시 포근해지는가 싶더니 수은주가 다시 곤두박질친 4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삼육지관공업 앞마당에서 종이 파이프 더미를 트럭에 싣던 카자흐스탄 노동자 세르게이(30)는 옷깃을 여미며 투덜대는 한국인 동료에게 "이깟 추위에 무슨 엄살이냐"며 핀잔을 준다. 작업이 계속되면서 아예 입고 있던 점퍼까지 벗어버린다. 속에 땀이 차서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표정이다.

2년 전 몽골에서 와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밧촐롱(45)에게도 한국의 추위는 차라리 '애교'다. 그가 살아온 울란바토르의 경우 난방 시설이 있다 해도 양이나 낙타털로 누빈 옷이 없으면 겨울을 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의 한 건설업체에서 만난 몽골인 보야(42)는 "동남아 등 남쪽 지방에서 온 동료들이 추위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잠깐 일하고 춥다며 일거리를 놔두고 난로 앞으로 몰려갈 때는 화가 치민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엔 바람이 없어서 참 좋다"고 했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을 막기 위해 모두 목도리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에 "알타이 산맥에서 불어 닥치는 눈보라에 비하면 산들바람"이란다. 고원 산간지방인 그의 고향은 10월 정도면 벌써 기온이 뚝 떨어져 이듬해 4월까지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고 했다. 1980년대 초에는 영하 48도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고.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겨울철 일부 공단지역에선 추운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의 주가가 상한가다. 경기도 북부에서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김광일(34)씨는 "업종 특성상 한겨울에도 밖에서 일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일손이 모자랄 땐 자연히 러시아나 몽골 쪽에서 온 노동자들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보통 난방장치가 잘 돼 있는 기숙사를 제공하지만 일부 노동자 중에는 "차라리 월급을 더 달라"며 군용 모포 두 장만 달랑 덮고 컨테이너에서 그냥 자는 경우도 있다고.

기골이 장대하고 기운이 좋다는 것 역시 이들의 강점이다. 따뜻한 남방계로 갈수록 사람들의 체구가 작아지며 추운 북방계로 갈수록 몸집이 커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울 신길동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 화성산업의 최무호(48)부장은 "보통 두세개 들기도 무거운 포장 박스를 다섯개씩 번쩍 드는 몽골 노동자들을 보면 체질적인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위에 강한 이유=취재 중 만난 몽골 노동자들에게 특별히 추위에 강한 이유를 묻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아마 음식 덕분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양이나 말고기를 넣어 만든 만두.국수 등이다. 고기에 감자.양파를 함께 다져 넣는 것까지는 우리 요리법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막상 완성되고 나면 음식들은 하나같이 기름 범벅이 돼 있다. 중간에 따로 양이나 말 기름을 부어 넣기 때문이다. 뜨거운 돌 사이에 양고기를 넣어 익히는 '헐헉'이란 요리를 먹을 때도 결코 비계를 떼어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 부분을 꼭 먹는다. "한국인들은 몸에 안 좋다고 하지만 추위를 이겨내기엔 동물성 지방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양고기와 말고기의 지방을 많이 섭취한다.

몽골에선 조리하면서 불에 달군 돌을 손으로 덥석 잡아 몸을 녹이는 데 쓴다. 물론 너무 뜨거워 수시로 양손에 번갈아 옮겨 쥐는데, 이 역시 전통적으로 추위에 내성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신체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인 손을 열로 자극함으로써 겨우내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는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

체질적인 면에서 추위에 강한 이유를 찾는 시각도 있다. 눈꺼풀의 연장부분인 '몽골 주름'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뭉툭한 돌출부위 등의 신체적 특징은 몸의 열 발산을 줄이려는 자연 적응의 결과라는 것이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순형(체질인류학)교수는 "한 집단이 수만년 이상 한 곳에 살면 체질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고, 개인 차원에서도 춥거나 더운 곳에 오래 살았다면 이에 적응하게 마련"이라며 "스스로가 자신이 더 추운 곳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 역시 추위에 자신있게 대처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김필규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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