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출범] '빚 4조 터널' 빠져나올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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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철도공사가 5일 출범식을 하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철도가 개통된 이래 105년 만에 철도 운영체제가 바뀐 것이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험난한 길을 헤쳐가야 한다. 공사 측은 "5년 뒤 흑자기업으로 전환시켜 놓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4조원이 넘는 부채와 매년 추가로 생길 손실을 메울 길이 막막하다. 요금을 현실화해 수익성을 좋게 하고, 필요하면 공사가 갖고 있는 자산을 팔아 재정을 탄탄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공사의 홀로서기는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빚더미 속의 공사 출범=철도공사의 부채는 4조5000억원에 달한다. 현재로서는 자체적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철도청은 지난해 내부적으로 "(자력으로는) 갚을 길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승객이나 화물 운송료로는 그동안 진 빚의 원리금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예컨대 고속철의 경우 올해 예상 매출액은 9671억원인데 원리금(8780억원), 시설사용료(3000억원), 부가세(454억원) 등 기본적으로 나가야 할 돈만 1조2234억원이다.

여기에 공사화로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있다. 국가기관으로 있을 때는 각종 세금을 면제받았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3800억원에 달하는 세금과 각종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 추세면 2005년 한 해에만 1조6586억원의 적자를 낸다. 2020년에는 3조2881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불어난다. 누적부채도 올해 6조7346억원, 2020년 41조8493억원이 된다.

엄청난 누적부채는 공사화의 기본 취지를 무색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승객 수요 충족▶분권화 시대에 맞춘 철도망 확충▶자율 경영을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 등을 이유로 철도청을 공사화했다. 철도공사 고위관계자는 "재정적자에 짓눌려 경영합리화는 고사하고 대국민서비스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급한 수익성 개선=공사는 "2009년에는 흑자를 내고 2019년에는 재정수지 균형을 이룬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연계열차를 개발하고, 다른 교통수단과의 환승시스템을 강화하면 승객들이 늘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유재산법에 묶여 있던 철도변의 땅이나 안 쓰는 역사 등을 개발할 계획도 세웠다. 적자선이나 적자역의 경영손실은 정부로부터 보상받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공사가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요금 현실화다. 철도 요금은 그동안 원가의 55% 수준에서 책정됐다. 외국의 경우 요금은 원가를 웃돈다. 다만 노약자나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할인해주고 정부는 그로 인한 손실을 보전해준다. 보전금은 영국의 경우 매년 2조3000억원, 프랑스는 2조5000억원 정도다.

이창운 교통개발연구원 철도교통연구실장은 "적자노선을 과감히 민영화해 개발을 유도하고 여기서 생기는 돈을 철도 확장 등의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사 화합해야=철도노조는 최근 2년 동안 두 번의 파업을 통해 정부의 민영화 방침을 무산시켰다. 지난해 말부터는 해고된 노조원의 복직투쟁 움직임도 있다. 전문가들은 철도공사의 조속한 경영 안정의 열쇠는 노사 안정에 달려 있다고 얘기한다. 공사화 이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력구조조정이 있을 수 있다. 이때 과거와 같은 노사 분규가 터지면 공사에는 치명적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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