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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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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0년 5월, 서울대 도서관과 행정본부 건물 사이엔 아크로폴리스란 이름의 잔디 언덕이 있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1주일 전쯤 1만여명의 학생이 모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 권력을 상대로 학생운동 세력이 어떻게 싸워 나갈 거냐를 놓고 토론이 뜨거웠다. 사회자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인 유시민이었고, 복학생 대표인 김부겸은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총학생회장인 심재철이 토론을 마무리지었다.

단상의 그들과 단하의 학생 군중이 심리적으로 엮어진 공간은 아크로폴리스였다. 아크로폴리스는 광장이다. 광장엔 자유와 공포가 교차했다. 거기에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됐다. 동시에 아크로폴리스의 자유가 언제 신군부의 군홧발에 유린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퍼졌다.

더 생각해 보면 아크로폴리스의 자유엔 허점이 있었다. 대체로 극단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결론이 토론을 압도했다. 현실적인 힘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드물었고 내부 역량을 감안한 냉정한 대안도 없었다.

"내 몸뚱이 하나 적의 탱크 밑에 굴려 이 나라 민주화의 제물이 되겠다"는 식의 과격한 발언이 줄을 이었다. 광장의 자유는 종종 불안정한 군중심리에 지배되는 허점이 있다. 불안한 군중은 자신의 비겁성이 노출될까봐 비겁한 듯이 보이는 발언자를 야유한다. 발언자는 군중의 야유를 피해야겠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강경파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익명의 군중 앞에서 강경파가 더 강경해지고, 온건파는 침묵하는 게 광장적 자유의 허점이다.

80년의 세 젊은이는 지금 여야 국회의원으로 성장했다. 누구는 강경파, 누구는 온건파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강경과 선명으로 치달았던 그들의 20대 때 학생운동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들과 같은 운동권 출신들은 국회의원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이 서너번은 바뀐 요즘, 그들이 주류가 된 국회가 여전히 강경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것 같아 걱정이다. 특히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아크로폴리스의 학생군중과 같은, 익명의 열렬 당원과 지지자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대 정신은 강경과 선명이 아니라 관용과 실용인데도 말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