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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선 배우기 힘든 역사의 순간, 퓰리처 사진전 보고 알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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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아빠. 이게 정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야?”

22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 이곳에서 열린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퓰리처상 사진전’을 찾은 한석원(11)군이 아버지인 한재필(43)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이들은 1951년 퓰리처상을 받은 맥스 데스포의 사진 ‘다리에 매달린 피난민들’을 보고 있었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무너진 대동강 다리를 피란민들이 새까맣게 매달려 건너는 사진이었다. “그래.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서커스도 아니고 무너진 다리 위를 저렇게 매달려서라도 지나려고 했겠어.” 한 교수가 아들에게 설명했다. 석원군의 누나 영원(15)양은 “참고서에서 본 적이 있어”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석원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교수는 이날 부인 조미애(42)씨, 딸 영원양, 아들 석원군과 함께 사진전을 찾았다. 자녀들의 여름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를 생각하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의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진전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재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오른쪽)가 22일 가족과 함께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순간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은 석원군의 호기심을 깨웠다. “저게 다 시체야?” “할례가 뭐야?” 석원군의 끊임없는 질문에 한씨 부부는 차근차근 답을 해줬다.

“왜 사진을 찍었을까? 떨어지는 사람을 잡아주지 않고.”

1947년 아널드 E 하디가 찍은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불타는 호텔에서 뛰어내리는 여성을 찍은 사진)’를 보면서 석원군이 물었다. 한 교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기자도 불타는 호텔에 이만큼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며 “기자 역시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얘들아. 우리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니? 그럴 수 없지? 이렇게 사건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널리 알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일도 이렇게 알 수 있는 거야.”

영원양과 석원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양은 72년 닉 우트가 찍은 ‘너무 뜨거워요. 제발 나를 구해주세요(베트남 전쟁 중 미군 비행기의 실수로 민간인들 위로 네이팜탄이 떨어지자 여자아이가 벌거벗은 채로 뛰어오는 사진)’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영원양은 “가슴이 찡하다. 전쟁이란 정말 무서운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가 옆에서 “저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후에 살았다”며 영원양의 어깨를 토닥였다.

“테러, 살해…그동안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많았습니다. 너무나 끔찍하고, 인간성의 말살이 뭔지를 보여주는 일들이었죠.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그런 사실이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진으로 보며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도 쉽게 배울 수 없는 역사를 설명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 교수는 사진전 관람이 아이들에게 큰 교훈을 던져준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도 옆에서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강렬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원양은 “친구들과 종종 전시회를 보러 다녔는데, 오늘은 부모님의 설명도 들을 수 있어 더 좋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8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1942년부터 2010년까지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도사진 145점을 전시한다. 1917년 미국 언론인 조셉 퓰리처가 만든 퓰리처상은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42년 보도사진 부문이 신설됐다. 전시를 시작한 지난달 22일 이후 한 달 만에 5만5000여 명이 다녀갔다. 중앙일보·스톤브릿지캐피탈·YTN이 주최했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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