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모시 이젠 세계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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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한국의 모시를 세계의 명품으로 만들 겁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전통 옷감인 모시의 세계화에 도전하는 여인이 있다. 재미동포 사업가 민영경(31·인도네시아 거주·미국 출생·사진)씨가 그다. 그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직접 조성한 모시밭에서 동남아시아 나라들의 왕족 등 최상류층 인사들이 찾을 정도의 최고급 모시를 생산해 팔고 있다.

재미동포 2세로서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민씨가 우리나라 모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약 6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UCI)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친구가 있는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적당한 사업을 모색할 때였다.

"친(親)환경적이면서 전망있는 사업을 찾던 중 한국에 모시라는 옷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접 충청남도 한산으로 달려가 모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알면 알수록 모시의 매력은 끝이 없더군요."

실 한가닥 한가닥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 '살아 있는 섬유'인 모시는 통풍과 땀 흡수가 잘되면서도 면(綿)에 비해 3~4배 이상 질기다. 민씨는 "동남아시아나 일본·중국에도 모시가 있긴 하지만 한국 한산모시의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며 "실크나 리넨보다 더 경쟁력있는 옷감"이라고 말했다.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이 있는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모시가 잘 자랄 만한 곳을 찾아헤매던 민씨는 자카르타 인근에서 '살락'이라는 산을 발견했다. 해발 1천2백m의 산 중턱에 위치한 60만평 규모의 대지는 모시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한산에 가서 모시 뿌리를 캐다가 아기 다루듯 정성스럽게 비행기로 가져왔어요. 손으로 한 뿌리 한 뿌리 심었는데, 다행히도 너무나 잘 자라더군요."

껍질을 벗긴 뒤 앞니와 손가락으로 훑어내려 가늘게 쪼개 만드는 한산모시는 모시풀의 재배와 추수부터 실을 만들고 모시를 짜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민씨는 한산에서 장인들에게 이 모든 기술을 직접 배운 뒤 인도네시아 원주민 1백여명에게 가르쳤다."처음엔 실 한 올 뽑는 데도 몇 시간씩 걸렸죠. 하지만 이젠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20~30승의 고운 모시천을 만들 수 있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을 생산하고 있어요."

민씨는 한산 모시 생산에서 한 발 더 나가, 명주와 모시를 적절히 배합해 구김이 잘 가는 모시의 단점을 극복한 개량 모시천을 짜내는 한편 천연 염색법을 응용해 모시에 색을 입혔다.

가족들에게서 '오랑우탄'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인도네시아 산중에 묻혀 모시 만들기에 열중했던 민씨. 그가 만들어낸 모시는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 컬렉션(패션쇼)에 전시돼 일본 디자이너 겐조 등 유명 패션계 인사들의 찬사를 받았다.

현재 민씨가 생산한 모시는 숄 하나가 미화 1천달러가 훨씬 넘는 가격에 팔릴 만큼 명품 대접을 받는다. 그의 고객 명단에는 브루나이·말레이시아의 왕족,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총리 등 최고의 VIP들이 올라 있다. 지난해 이후 1백8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이르면 올해 말 '모시(Moshee)'라는 법인을 한국에 설립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한국의 모시가 역사와 전통이 담긴 '보물'로서 제대로 대접받기를 바란다"는 민씨는 "젊은 세대들에게 모시가 얼마나 가치있는 옷감인지 꼭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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