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파워 소프트 코리아] 3. 시장 투명해진 충무로엔 돈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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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은 모든 소프트 산업에 골고루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영화가 급성장한 데는 '투명성'이라는 또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 영화인들은 "가업 형태로 이어져 오던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버리고 투명성을 확보한 것이 한국영화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투명하니까 안심하고 자본이 몰렸고, 작품의 질도 향상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전 한국영화는 대형 극장 소유주와 그 연계망이 나눠 먹기 식으로 운영했다. 90년대 중반 삼성.대우 등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뛰어들면서 달라졌다.

투명한 회계 처리와 감독.배우.예산 규모 등을 치밀하게 분석해 추정한 예상 관객 수 등이 기획의 필요조건이 됐다.

이는 현재 충무로의 '제도'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는 통합전산망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관객 수를 집계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는 "투명한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창업투자사.은행.개인 등 다양한 자본이 안심하고 영화 펀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거꾸로 투명성 확보에 실패하면 소프트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영화 쪽이 착실하게 경쟁력을 갖춘 반면 구태의연한 시스템에 기대고 있는 음반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0만장 넘게 팔리는 음반이 드물고 문 닫는 음반매장도 속출하고 있다.

2000년 2만개에 달하던 음반매장은 현재 500개도 채 안된다. MP3 등을 통해 불법 복제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불투명한 시스템이 문제다.

음반시장의 집계 시스템만 봐도 알 수 있다. 음반은 영화와 달리 통합전산망을 이용한 정확한 전산집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음악산업협회가 각 유통사들이 보고한 내용을 근거로 계산하는 것이 전부다.

유통사들의 보고 내용에 따라 집계량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집계에 사용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바코드도 제각각이다. 이는 유통사들이 자기 회사의 정확한 거래 내역이 노출돼 세금이 매겨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음반 제작 과정에서 의상 협찬비가 의상 구입비로 살짝 바뀌는 등 회계 처리도 불투명하다. 문화연대의 이동연 소장은 "잘나가는 음반에 다른 음반을 끼워 유통시키는 등 불합리한 관행들이 깨져야 음반시장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다"며 "투명성이 음반산업 성장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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