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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케이건 맞아 젊어지는 미 대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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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엘리나 케이건(사진) 신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상원 법사위 인준안이 20일(현지시간) 찬성 13표 대 반대 6표로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한 가운데 공화당 의원 7명 중 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인준안은 상원 본회의 전체 표결만 남았다. 상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고, 공화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본회의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미 언론은 내다봤다. 본회의 표결은 다음 달 초께 이뤄질 전망이다.

소송 천국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가 중대사와 관련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9명의 대법관은 미국 사회의 이념적 기울기를 결정한다. 게다가 대법관 임기는 종신이 보장된다. 그런 만큼 대법관 임명에 쏠리는 관심은 대선 못지않다.

케이건이 상원 인준을 받으면 미 역사상 네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또 9명의 대법관 중 3명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미 연방대법원의 변화를 상징하는 일이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케이건은 흑인 최초 대법관이었던 서굿 마셜 밑에서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다. 1995년부터 99년까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국내정책 고문으로 일하다 2003년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이 됐다. 법관 경력은 없다. 법관 경력이 없는 법조인이 연방대법관이 된 건 72년 이후 처음이다.

또 유대교도인 케이건이 대법관에 오르면 미 대법원 역사상 개신교도가 단 1명도 없는 상황이 처음 발생한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6명의 대법관은 가톨릭 신자이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유대교 신자다. 케이건 전임자인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유일한 개신교도였다.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에서 종교가 더 이상 대법관 임명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상징한다.

반면 성과 인종은 앞으로 주요한 임명 기준이 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여성 법률가인 케이건을 대법관에 지명한 것은 췌장암 수술을 받은 긴즈버그 여성 대법관의 은퇴를 고려한 포석이다. 여기에다 9명의 대법관 중 3분의 1 이상은 여성으로 채워 양성평등에 다가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미 법조계는 보고 있다. 흑인으론 67년 마셜 대법관이 최초로 임명된 뒤 그의 뒤를 이어 91년 클레어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흑인 대법관의 명맥을 잇고 있다. 토머스 대법관 후임은 흑인이 지명될 것으로 법조계는 기대한다. 급속히 인구가 늘고 있는 히스패닉계에선 지난해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최초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케이건이 대법원에 입성해도 내부의 이념적 균형에 변화가 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법원은 과거 공화당 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이 절반 이상이어서 보수적 색채란 평가를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5명의 대법관을 임명해 보수진영이 대법원을 장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긴즈버그와 브라이어 두 대법관을 임명했다. 오바마는 취임 후 16개월 만에 2명의 대법관 후보를 지명했지만 진보성향 대법관 자리를 진보 법조인으로 채웠다.

케이건은 전임자와 같은 진보주의자이면서 한 세대 젊다는 점에서 소토마요르와 함께 대법원 내에서 진보주의 조류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젊은 세대의 등장은 법원 외부의 경험과 개인적 교감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법원을 변화시킬 전망이라는 게 미 언론의 대체적 평가다. 케이건은 50세, 소토마요르는 55세여서 과거 대법관의 퇴임 연령을 고려하면 20~30년의 롱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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