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김대업 녹취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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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폭로한 김대업씨가 12일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은 내용의 앞뒤 연결이 제대로 안돼 혼란스럽고 헷갈린다. 병역 비리 수사팀에서 활약하며 수사 전문가로 통해온 金씨가 이처럼 허술한 녹취록을 근거로 큰소리쳤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金씨가 제출한 녹취록은 우선 내용도 내용이지만 녹음 과정·형식에서부터 의문 투성이다. 녹취 일시가 1999년 3월~4월께로 분명치 않은 데다 金씨가 어떻게 이같은 내용을 몰래 녹음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녹음 테이프가 원본은 따로 있고 사본을 다시 복사한 뒤 녹취한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도대체 왜 원본을 있는 그대로 제출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된다. 네개라던 녹음 테이프 숫자가 이제 와서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을 바꾼 것도 의문이다.

녹취록이라며 언론에 공개한 것은 내용을 거두절미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검찰에 제출된 테이프엔 후보 부인 한인옥씨가 아들 병역면제를 부탁하며 의정 부사관 김도술씨에게 돈을 주었고, 金씨는 다시 상급자인 변모 실장에게 이 청탁의 처리를 부탁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녹음 테이프는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원본도 증거 능력이 인정되기 어려운데 몇번씩 편집·복사 과정을 거쳤다면 더욱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녹취록만 공개하면 모든 의혹이 풀릴 것처럼 장담하던 金씨가 이제 와서 "이 녹취록 제출로 녹음 테이프의 존재 여부 논란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으니 실망스럽다. 검찰에 제출한 내용도 공개돼 진위를 가려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테이프의 진정성과 내용의 진실성이 핵심인데 지금껏 어느 것 하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이젠 검찰도 더 이상 金씨 입만 쳐다봐서는 안된다. 金씨는 스스로 녹음 테이프를 포함한 모든 증거물을 즉시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검찰은 증거물의 진정 성립 여부부터 판단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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