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산물 품질인증제 확산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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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영국에서 전차용 레일의 규격화로 시작된 품질표시제도는 1903년 영국규격협회(IBS)를 발족한 계기가 됐다. 이어 18년 상표법이 제정됨에 따라 공산품 제조업체들은 애써 만든 고유한 상품에 대해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증표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 보급돼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결성되기에 이르렀고, 규격표시 마크 전문위원회가 설치돼 국제 정보교환이 촉진됐다.

우리나라에서도 61년 공업표준화법의 제정으로 KS 표시제도가 실시됐으며, 품질을 식별하기가 어려운 품목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품질의 수준이 KS 규격을 충족하도록 했다.

96년에는 농산물 품질인증사업이 실시돼 농산물에도 품질표시제도가 도입됐다.이 제도는 우리나라의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지난 몇년 동안 실시된 농산물 품질인증제도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농산물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농산물은 그 특성상 일반 공산품처럼 규격화·등급화하더라도 상품성이 쉽게 향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국내 농산물 유통체제에서 도입된 품질인증제도는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의 농산물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지역별 품질인증사업에 의한 품질 향상으로 농산물의 상품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잉여 농산물의 해외 수출 문제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철저하게 다뤄져 많은 성과가 나왔다. 또 일본에서는 유기농산물에 대한 품질인증제도를 시작으로 모든 농산물에 대한 철저한 품질관리제도를 확립했으며, 수입농산물에 대해서도 까다롭게 품질을 규제해 우리 수출농가가 많은 곤란을 겪어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같이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지역별 품질인증제도가 확립되면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거래선을 쉽게 확보할 수 있고,거래비용을 절약해 농민들이 상품의 내용에 상응하는 값을 보장받게 할 수 있다.소비자는 각자의 선호에 따라 차별화된 양질의 농산물을 싸게 구입하는 경제적 편익을 누릴 수 있다.

농산물 시장과 유통시장의 개방으로 국내에서도 농산물의 유통 여건이나 유통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안전하고 규격화된 양질의 농산물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수입 농산물과 차별화하는 한편 복잡한 유통 단계를 줄이고 유통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충청남도의 각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은 지역상품의 경쟁력 향상과 산지(産地)유통의 강화를 위해 농산물 품질인증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지역농산물 품질인증제도는 산지에서 실시하는 단순한 품질인증작업에 그치는 게 아니다. 품질인증작업과 더불어 규격화·고급화·포장 등의 산지작업을 통해 농산물의 상품성을 높이고, 물류센터를 통해 대형 할인마트와 같은 도시 대형소매점에 농산물을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품질인증사업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충남도와 함께 산업자원부 농축산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시범사업단이 지역농산물 품질인증사업을 시작한다. 이는 농산물의 품목별 차별화와 지역별 산지유통 거점의 강화를 통해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이번 사업이 국내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에 밑거름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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