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희덕 '여,라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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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나희덕씨의 시편들은 삶의 따뜻한 진실을 일깨우는 데 진가를 발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일 년 동안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나씨의 작품을 읽어보아도 이러한 시세계의 특징은 고르게 유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 라는 말'은 따뜻한 진실을 끌어안는 시인의 상상력이 얼마나 깊은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는 일반적으로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 즉 암초를 뜻한다. '여'는 썰물 때가 되면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은 바로 그것을 시의 소재로 삼아보고 있다. 삶에서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고 시인이 노래할 때 우리는 이 단순한 규정 속에서 비범한 시적 통찰을 찾아낼 수가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 까맣게 사라져버린 사람과 장소, 그리고 체험들.

이제는 누릴 수 없는 그것들이 그러나 우리 곁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그 단순한 규정이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사람들, 찾았던 곳, 그리고 겪었던 일들은 마치 썰물에 모습을 드러내는 '여'처럼 문득 우리의 기억 속에 떠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구체적으로 불러보는 '여'의 지명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속에는 차마 아주 잊어버리지 못한 그리움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그 그리움의 흔적들에 대하여 시인은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고 노래한다. '여'의 자취가 사라져버릴 것이 아쉬워 바위에 부딪치던 파도소리를 "파도의 울음"이라고 표현해 놓은 것도 공감이 되지만, 한층 깊은 울림은 '여'라는 낱말이 불러일으키는 음성적 효과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목메이게 부를 때 "아무개여, 아무개여"하는 바로 그 호격 조사의 느낌을 '여'의 구체적인 지명들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대천어멈여!"라고 한번 소리쳐 불러보라). 그러므로 목메여 부르는 듯한 느낌 때문에 시인은 그 이름들에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사라져버렸다 문득 떠오른 기억처럼 '여'도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문득 떠오른 기억이 다시 사라지듯이 '여'의 자취도 밀물 때면 다시 사라져버린다. 사라짐이 아쉬워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그러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여도 있다" 또는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러한 '여'의 모습은 마치 찰나지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여'가 상징하는 것이 덧없는 삶의 추억이라고 하더라도, 또는 찰나지간의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시인은 그것의 존재의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가볍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절실한 그리움으로 품으려 한다.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이 바로 그러한 그리움의 증인들이다. 그리하여 새들의 퍼덕이는 날갯짓처럼 만남에 대한 그리움은 지칠줄 모르고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온다. '여'의 모습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이경호<문학평론가>

◇나희덕 약력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어두워진다는 것』 등

▶김수영 문학상·김달진 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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