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의 북한자원 선점, 이대로 방치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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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북한은 자원개발만 잘해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국가다. 하지만 자원을 개발하려면 시설투자를 해야 하고, 도로·철도를 만들어야 하고, 전기를 공급하고 기술투자를 해야 하는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에는 이런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자본이 없다. 이러니 중국이 달라고 하지 않아도 개발권을 팔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북한 상황인 것이다. 과거 북한 정권은 “경제적 예속은 정치적 예속이고 경제적 식민지는 자원식민지에서 출발된다”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그러던 북한이 경제주권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더 많은 개발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자원개발권 매매의 길을 가는 이유는 그것이 개방보다 덜 체제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체제유지 비용을 댈 수 없는 수준으로 몰락해 가고 있는데 오히려 후계체제 등장은 더 많은 정치·경제·안보적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의 체제유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다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면 북한의 경제주권에 대한 중국의 점유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북한의 육상 자원이든, 해상 자원이든 모든 자원은 민족의 자산이므로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민이 결정해 그 활용 여부를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한 정권이 국민의 동의 없이 정권유지 차원의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민족의 자산을 팔아넘기는 것은 나라를 파는 매국행위에 버금가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이 남북한 대립과 내부 정쟁에 매달려 있는 사이 북한 경제는 더욱 더 어려워지면서 체제유지 비용 마련을 위해 민족의 자산을 중국에 넘기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남북한이 경제적 통합과 정치적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남과 북이 한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당위성을 넘어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남한의 자본·기술이 결합해 보다 강력한 통일 경제대국을 만들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통합 당위성과 그 가능성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대외경제는 무역·투자·지원에 있어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1990년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던 비중이 25%였던 것이 현재 80% 수준으로 증대됐다. 그러나 그것은 쪼그라드는 북한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만 커지는 과정이었을 뿐 북한 경제를 빈곤 함정에서 건져내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북·중 경제관계가 밀접해진 지난 20년 사이 북한은 세계 최빈국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원인은 두 가지다. 중국은 북한이 확실하게 잘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지원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적극적으로 유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주면서 안정을 추구하고 북한이 스스로 가져다 바치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어려움을 활용해 우리 민족의 전략자원들을 점유해 가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외교정책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대국주의이고 신(新)식민주의적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이 상황이 방치된다면 남북 통합경제가 되더라도 풍부한 천연자원과 전략자원들은 이미 중국의 수중에 들어가 있게 될 것이다. 경제 통합 후 우리가 자원과 인프라를 개발하려 해도 중국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할지 모른다. 심지어 기차를 타거나 바다에 나가는 것조차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중국에 대한 종속적이고 불균형적인 산업구조를 바꾸는 데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부나 국민이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문제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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