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세계 1위 한국, 7년 만에 중국에 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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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업계가 중국에 추월당했다.

18일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조선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3대 지표인 수주량·수주잔량·건조량에서 모두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이는 한국이 2003년 3대 지표에서 모두 일본을 앞지르며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 지난해 수주량과 수주잔량에서 처음 중국에 밀렸으나 건조량에서는 계속 1위를 지켰었다. 그러나 올 상반기 국내 조선업계 건조량이 748만 표준화물선 환산톤수(CGT)에 그치는 사이 중국은 한국을 따돌리고 801만 CGT로 반기 기준으로 처음 1위에 올랐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기준으로도 중국의 역전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올 상반기 선박 수주량과 수주잔량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중국에 뒤졌다. 수주량은 462만 CGT(점유율 38%), 6월 말 수주잔량은 4925만 CGT로 중국의 502만 CGT(41.2%)와 5331만 CGT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수주량에선 지난해 중국에 추월당한 뒤 올 1~4월 다시 중국에 앞섰으나 5월 이후 재역전당했다. 여기엔 중국 정부의 자국 조선업계 몰아주기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세계 조선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춤하는 사이 중국 조선업계는 정부의 강력한 금융지원을 배경으로 약진했다. 그러나 올 들어 선박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선주들 사이에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한국 조선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선박을 내세워 선전하자 중국은 수주경쟁에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조선·해운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중국 해운사들이 선박 발주를 활발히 재개하고 있다. 이 물량 대부분이 자국 조선업체에 몰리면서 중국이 세계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조선 시장에서는 자국 업체가 발주하는 선박은 자국 조선업체가 건조하고, 자국 해운업체가 수송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을 추월하겠다고 공언했던 2015년보다 훨씬 빠르게 중국에 1위를 내줬다”며 “지난해 말부터 국내 업체들의 수주 활동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중국은 자국 해운사의 발주 물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연간 실적에서도 올해 1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1위를 뺏기기는 했지만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는 한국의 경쟁력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수주량·수주잔량·건조량=수주량(contracting)은 조선업계가 일정 기간 선주로부터 주문 받은(수주한) 선박 물량. 수주잔량(orderbook)은 전체 수주량 중에 이미 완성해 선주에게 넘겨준 선박을 뺀 나머지. 즉 조선소에서 현재 만들고 있는 선박과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선박을 합친 물량. 건조량(deliveries)은 일정 기간 배를 만들어 선주에게 넘겨준 물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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